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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여백을 채우는 여정 화성에 쌓인 애틋한 흔적을 되새기다

2021-04-23

문화 문화놀이터


타박타박 걷는 문화유산 오솔길
시간의 여백을 채우는 여정 화성에 쌓인 애틋한 흔적을 되새기다
'봄 햇살을 느끼며 계절의 여유를 맛보기에 그만인 화성'

    한 마디 말로는 갈무리 되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길고 굴곡진 길을 건너온 시간은 더욱 그러하다. 아주 긴 시간을 거슬러 닿은 화성의 문화유산에는 저마다 깊은 울림이 뚜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걸음을 늦추고 더욱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화성에서 찾은 문화유산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시간의 여백을 알차게 채울 수 있는 값진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었다. 
조선시대 왕 중 성군으로 손꼽히는 정조는 정치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왕이자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를 향한 각별한 효심을 가진 아들이었다. 세자였지만 왕에 오르지 못한 채 뒤주에 갇혀 유명을 달리한 조선왕조 역사에 남은 비운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성군 정조의 아버지다.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효심, 융건릉
    융건릉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정조가 영면한 건릉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서울 동대문구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 화성으로 옮긴 후 원호를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바꾸고 능에 못지 않게 주변을 조성했다. 이후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현륭원 동쪽에 건릉을 조성했고 후에 고종에 의해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명칭을 융릉으로 올려 현재의 융건릉에 이르게 되었다. 



    살아서 미처 다 나누지 못한 부자의 정을 나누기라도 하듯 나란히 영면한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정조가 갸륵한 효심으로 정성을 다해 조성한 융건릉은 예법을 지켜 최대한 아름답고 섬세하게 꾸며 미학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이다. 
    인상적인 것은 뒤주에 갇혀 마지막을 보낸 아버지를 배려한 마음의 표현이었는지 다른 왕릉과 달리 정자각이 능을 가리지 않게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유난히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한 융릉은 탁 트인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위치라 사후에는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한 아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융릉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건릉으로 가는 길은 상수리나무 숲길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부자의 따스한 정이 흐르는 듯한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닿는 건릉 역시 융릉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병풍석을 사용한 융릉과 달리 건릉은 난간석만 둘렀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 등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수려한 풍경과 더불어 가까운 거리에 나란히 영면한 부자의 능인 융건릉. 정치적인 무게를 내려놓고 살가운 부자로서 행복한 사후를 보내고 있을 것 같은 따사로운 풍경이 조용히 내려앉는 명당이자 평화로운 공간이라 봄 햇살을 들이켜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左) 융릉에 있는 고종의 친필 비문     右上) 정조가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      右下) 아버지 옆에 잠든 정조의 능인 건릉
 
가늠할 수 없는 시간으로의 회귀, 공룡알화석 산지
    1억 년 전은 공룡이 살았던 시대였다고 한다. 도저히 체감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그 흔적을 더듬으면서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곳이 화성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의 흔적 대부분이 공룡 발자국 화석인 반면, 화성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는 공룡 알이 화석의 상태로 보존되어 눈길을 끈다. 시화호 주변 습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공룡알 화석을 발견했고, 지금은 이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6~7개의 둥지에서 100여 개가 넘는 공룡 알 화석이 발견된 화성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는 지금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화석이 보존되어 있다.
 
左) 독특한 생태를 볼 수 있는 공룡알화석 산지    右)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공룡 알 화석

    흔히 상상하는 엄청난 크기의 공룡 알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작아 오히려 더 놀랍고 신기한 공룡알화석 산지. 염전과 작은 섬, 해식동굴 등 주변 환경도 독특한 생태를 가지고 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공룡 알을 찾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공룡알화석 산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 신비로운 분위기의 풍경도 일품이다. 특히 입구에서 공룡알화석산지에 닿을 때까지 아득하고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을 걷는 기분도 이색적이다.
    편안히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나무 데크 사이로 온통 삘기(벼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높이는 30~80cm 정도 자라며 뿌리와 줄기는 백색으로 마디에 털이 있다)가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흔들리며 탐방객을 유혹한다. 생명력을 잔뜩 머금은 생태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룡알화석 산지는 단순히 공룡 알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너른 자연의 기운을  호흡하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이라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준다. 
푸근함이 느껴지는 여염집의 풍경, 정시영·정수영 고택
    왕가의 위엄에 경의를 표하고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더듬은 후 화성의 마지막 여정으로 찾은 곳은 소박한 삶의 현장이었던 공간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터를 닦은 마을 한쪽에 자리하고 있어 스쳐 지나기 쉬운 정시영·정수영 고택은 각각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다. 정시영 고택은 솟을대문이 인상적인 기와집이고 정수영 고택은 한결 문턱이 낮고 따사로운 초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조선 고종 때 세워졌다는 상량 기록이 있는 고택인 정시영 가옥은 크고 화려한 주택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50칸이 넘는 규모로 사랑채, 행랑채, 안채 등이 배치되어 있고 평면구조가 ‘월(月)’자 형을 나타내는 독특한 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옛 사람들의 삶을 차분히 더듬으며 고택을 들여다 보면 기왓장 한장, 문살 하나도 기품 있게 느껴지는 집이다.
 
左) 전형적인 경기지방 가옥 형태를 가진 정시영 고택    右) 초가 시렁이 푸근하게 느껴지는 정수영 고택

    인접한 정수영 고택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와 행랑채가 모여 전형적인 경기도 지역의 가옥 형태인 ‘ㅁ’ 자형 평면구조를 갖추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이고 앉은 초가 시렁이 운치를 더하는 정수영 고택은 비록 초가이기는 하나 안채와 사랑채의 구색을 갖추고 대문에 홍살을 넣었으며, 돌과 자연석을 섞어 쓴 주춧돌을 비롯해 좋은 목재를 쓴 것에서 격조가 느껴진다. 양지 바른 곳에 터를 닦고 앉은, 이제는 자주 만날 수 없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고택에서 하염없이 봄 햇살을 느끼며 계절의 여유를 맛보기에 그만인 정시영·정수영 고택은 정겹고 푸근한 우리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