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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뱀

2021-04-28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뱀
'글. 이정연'

    “아버지 오늘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뱀을 봤어요. 근데 이 뱀은 눈도 까맣고 꼬리도 까맣고 온통 다 완전히 까맸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며 “ 그건 오사(烏蛇)라는 건데 잡아서 팔면 엄청나게 비싸!” 그러셨다. “아버지 엄청나게 얼마요?” 나는 흔해빠진 뱀 한 마리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말씀에 놀라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엄청난 그게 도대체 얼마냐고 물었다. 오사를 잡아본 적도 팔아보신 적도 없는 아버지는 내가 하도 졸졸 뒤따라 다니며 묻는 게 귀찮으셨던지 “기와집 한 세 채쯤 받을걸.” 그러셨다.
    그때부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장마철이면 노래기가 한 움큼씩 떨어지는 초가 대신 대청마루가 시원한 기와집을 선물할 수 있다. 그 대청마루에 스란치마를 입고 우아하게 서 계시는 엄마를 상상만 해도 황홀해서 나는 반드시 그 뱀을 생포해 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어떡하면 그놈을 한 방에 생포해 올지 잠도 잊고 고심한 끝에 이윽고 묘안이 떠올랐다. 땅꾼이 수십 마리 뱀을 잡아 자루에 담아오던 모습이 생각났다. 집에 흔한 비료 포대를 접어 책보 속에 넣고 왕복 십 킬로 등하교 때 뱀이 나타났던 저수지 근처에서 뱀을 찾아보았다.
    일주일 내내 친구들 몰래 뱀이 나타났던 곳을 뒤졌지만 뱀은 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 까만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땅속 캄캄한 굴 안에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 허망한 꿈 기와집 세 채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 이후에도 나는 그 까만 뱀을 찾느라 오래오래 저수지 곁에서 헤맸다.



    또 어느 날은 이웃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집 울타리 근처를 지나는데 쨍하게 맑은 날에 마치 비 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한 무더기의 뱀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깜짝 놀라 내가 헛것을 본 건가 하고 있는데 그 뱀들이 일시에 흩어져 어디로 사라져 가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리 남은 뱀이 그 자리에 있어 자세히 보니 머리가 둘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버티다 보니 한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힘겨루기만 하는 거였다. 깜짝 놀라 놀던 이웃집으로 달려가니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뱀의 왕인 용신이 있는데 그놈이 신호를 보내 부르면 인근의 모든 뱀이 다 모인다.”는 거였다. 손도 발도 없는 녀석들이 두목의 신호에 한 곳으로 집합한다? 놀랍고 신기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날름거리는 긴 혓바닥,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이 반짝이는 눈, 나는 이 정체 모를 동물이 징그럽고 무서우면서도 끓어 넘치는 호기심 또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주 징그럽고 무서운 것에도 지속해서 노출되면 무신경해진다. 내가 밥을 먹으면서 TV 다큐멘터리 누룩뱀의 포란 장면을 지켜보자 남편이 깜짝 놀라 리모컨을 뺏어 얼른 채널을 돌려 버렸다. “당신은 왜 이런 징그러운 것을 밥 먹는 시간에 다 보나?” 소리 질렀다.
    영화에도 뱀이 나온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화과 바구니를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무화과가 잘 익었나 보자며 뱀이 든 바구니 속에 그 섬섬옥수를 집어넣는다. 화가들은 이 장면을 다투어 과장하느라 그녀의 탐스러운 젖가슴을 무는 독사를 그렸는데 얼마나 많은 화가가 이 장면을 그렸는지 일일이 셀 수도 없다.
성경에선 또 어떤가?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느님이 먹지 말라는 동산 중앙의 과일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느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뱀의 유혹에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긴 혓바닥과 눈뿐인 뱀에게 어째서 아름다운 이브가 유혹당하고 마는가. 뱀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이 나서 징그럽고 무섭다는 느낌을 뒤로하고 유심히 보게 된다.
    이윽고 나는 나와 정서가 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천경자 화백이었다. 금방이라도 화폭을 찢고 기어 나올 것 같은 ‘생태’라는 제목의 떼뱀도 흥미로운데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라는 그림을 보면 충격 그 자체다. 아름다운 여인이 똬리를 튼 뱀 네 마리를 마치 화관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는 그림이다. 나의 뱀이 호기심을 살짝 넘은 수준이라면 천 화백의 눈엔 아름다움으로까지 승화된 뱀이었다. 더구나 생태라는 뱀은 원래 서른 세 마리였는데 그의 연인이 뱀띠 생으로 나이가 서른다섯이었기 때문에 두 마리를 더 그려 서른다섯 마리가 되었다고 하니 호기심이 폭발 천 화백의 모든 그림에 탐닉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뱀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친구들이 입을 틀어막아서 나는 하고 싶은 이 흥미진진한 동물에 대해 강제로 함구해야만 했던 답답함을 천 화백의 그림을 통해 풀었다. 이 세상 단 한 사람 나처럼 뱀에 대해 약간의 호감과 엄청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또 있긴 있었구나 하고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예술성 여부를 떠나 큰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뱀이 우리 자두농장에 나타났다. 그냥 예쁜 꽃뱀도 아니고 밭 여기저기 돋아난 조뱅이 잎 아래, 나무 둥치 곁에 은밀히 똬리를 틀고 째려보는 독사가 두 마리씩이나 나타났다. ‘나 건들기만 해봐!’ 하듯 폭발 직전의 사춘기 소년처럼 반항적인 포스가 대단하다. 크기가 각기 다르지만 같은 살무사인 걸로 봐서 아마 어미와 다른 새끼 한두 마리쯤 더 있는 것 같다.
    병석에 계시는 아버님이 이제 너희들이 어떻게든 해보라고 물려주신 농장이다. 방치하는 건 당신 살아계시는 동안 불효인 것 같아 주말을 이용해 농사지어 보는데 이제 남편은 살무사가 있는 한 밭에 못 간다고 엄살이다. 누가 뱀에 물린 걸 봤는데 허벅지가 몸통보다 더 커지며 한 달 넘게 고생하더라고 했다.
    뱀은 방어용으로 최후의 순간에만 공격할 뿐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막무가내다. 인근 연로하신 어른들의 밭에서는 가끔 제초제를 쓰신다. 그래도 우리는 필수적인 농약은 적게 쓰지만 제초제만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게 생으로 먹는 과수농사의 기본이라 믿기 때문이다. 해마다 풀과 전쟁 치루 듯이 부직포를 덮어 풀을 다스리는데 제초제에 쫓긴 뱀이 이 밭으로 죄 몰려온 것 같다.     남편은 이제 독사한테 농장을 뺏겼다면서 탄식하고 밭에 발 들여 놓길 꺼린다. 할 수 없이 뱀이 싫어한다는 온갖 것을 검색해 보고 우리 농장에 적합한 방법 살충제를 조금 뿌리기로 했다. 살충제 뿌리기 전에 쫓아버리려고 끝까지 순찰해 봐도 뱀은커녕 그림자도 없다. 그래도 언제 다시 나타나 김매는 어머님 엉덩이 물지도 몰라 살충제를 뿌렸다. 살충제 뿌리고 오후에 가 봐도 죽은 뱀은 없다. 아직 다 크지 않은 녀석인데 때맞춰 잘 도망가서 다행이고 내가 그 사체를 치우지 않아도 되는 것 또한 다행이다.
    어릴 때 마당에서 놀면 이따금 구렁이가 지나가곤 했다. 그때 엄마는 당황하거나 뱀을 잡거나 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우리 아이들 헤치지 않으면 나도 널 안 헤칠게. 너는 어서 네 새끼가 있는 곳으로 가라!” 그럼 신기하게도 뱀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디로 사라지곤 했다. 나는 뱀이 지나간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손톱에 봉숭아 꽃물도 들이고 공깃돌 놀이도 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이 있을 곳에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자리가 좋은가 저 자리가 이권이 있나 남의 자리를 엿보고 탐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우리 밭의 뱀이 이브를 유혹하던 지혜를 모아 새끼들과 안전하게 잘 있을 곳 먼 산으로 갔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