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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7080은 서럽다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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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7080은 서럽다
'글. 박순철'

    2030이 대세다. 2030은 어디를 가도 인기 만점이다. 그들은 그만큼 아름다우며, 기대도 크고 향기가 난다. 소갈 씨 같은 7080에게는 거의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7080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도 마구 쏟아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관대작들이 2030의 속마음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났다. 
    공정과 정의가 실종된 암울한 시대에 살고있는 2030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위함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전처럼 쉬 당할 그들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2030에 후한 점수를 주었는가? 지금도 말만 앞세우지 실제로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
    전에도 그랬다. 무슨 선거철만 되면 2030은 미래의 주역이라며 추켜세웠다. 그러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싶게 없던 일로 되돌아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최고 통수권자가 2030의 의견을 듣겠다며 초청했다.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 듣기 민망한, “돈 몇십만 원 준다고 표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운하고 맺힌 마음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기도 했다. 또 있다. 꼰대 정당이라 불리는 모정당 당 대표에 출마한, 국회의원에 세 번이나 낙선한 30대가 돌풍을 일으키더니 하늘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승리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장하고 보기 좋은가. 
    서울 시장 보궐선거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2030의 의견을 가슴으로 청취하고 그들을 보듬은 탓일까?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면 2030을 있게 한 주역, 7080은 어떤가? 이제 그들은 설 자리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이 나라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요. 오늘의 풍요를 위해 자신들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비바람이 쏟아지고 눈보라 치는 북풍한설도 이겨내며 달려온 세대 아닌가. 그러나 이제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알아달라고 애원도 하지 않는다. 7080에겐 큰 관심도 없고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행복동 주민센터를 찾은 소갈 씨의 표정이 어정쩡하다. 명칭이 복지센터로 바뀌어있어서다. 하는 일과 장소는 그대로인데 왜 이름을 바꾸었는지 의아하다. 어림짐작으로 그 업무이겠지 하며 들어가면서도 속이 또 부글거린다. 7080은 잘 알아보지도, 알아듣기도 힘든, 타운, 하임, 칸타빌, 등 어려운 외래어가 곳곳에 난무한다. 한번은 서울에 있는 딸네 집을 찾아가다가 무척 헤맨 일이 있다. 옛날처럼 개나리 아파트, 신라아파트, 좀 좋은가. 택시를 타지 않았다면 찾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은 7080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처사에 분통이 터지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제시대에 뒤떨어진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민원실은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어느 창구 앞으로 다가간 소갈 씨, 무슨 상담 끝에 기어이 큰 소리를 내지른다.
    “아니, 힘없는 늙은이 말이라고 그렇게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되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없어서 자세한 내막을 모르겠습니다.”
    “내가 분명히 지난 12월에 전화로 신청을 했어요. 그리고 영 응답이 없기에 1월에 다시 와서 담당자를 만났는데 해준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이 6월이에요. 되든 안 되든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면 민원인에게 상황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히 안된다고 했으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설치했을 겁니다.”
    민원실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지금 어디 있어요. 사무실로 좀 오세요.”
    무슨 일인가 하여 젊은 사내가 급히 민원실로 들어온다.
    “김 주무관, 이 어르신이 「가스 타이머콕」신청했다고 하시는데 신청받은 것 맞아?”
    젊은 사내가 소갈 씨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무슨 파일을 뒤적인다. 
    “없는데요.”
    “잘 찾아봐?”
    이번에는 사내가 컴퓨터에서 이 파일 저 파일을 열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분명히 저한테 하셨습니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번에는 소갈 씨에게 되묻는다.
    “같은 말을 또 하란 말입니까?. 지난 12월에 전화로 가스 자동차단기 신청했어요. 바로 되는 줄 알았더니 영 소식이 없어서 1월에 다시 와서 그걸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신청은 돼 있는데 가스공사에서 하는 것이어서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곧 될 거라는 대답을 했어요.”
    “분명히 저였습니까?.”
    “내가 얼굴은 기억 못 하겠는데 젊고 담당자라고 했어요. 내 말은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언제쯤 된다고 하든지, 아니면 올해에는 예산이 소진되어 더 지원해줄 수가 없다고 했으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설치했을 것이란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이라도 해 둘걸’



    그제야 젊은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뭔가 자신의 책임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다. 소갈 씨는 자신의 마음만 믿었지 증거를 남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만약 2030이어서 인터넷으로 신청했다면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지만.
    “죄송합니다. 다시 신청해 드리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행정이 이렇게 돌아가요?”
    “죄송합니다. 주소와 생년월일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박 소갈. 1949년 3월입니다.”
    “혹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십니까?”
    “아니요. 그 금액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만한 돈이 없어서 해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가 65세 이상 가정에 무료로 가스 안전차단기를 설치해주기로 했으면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널리 알려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당신들이 할 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르신 말씀 다 맞아요. 하반기에 신청하라는 공문이 오늘 왔습니다. 오늘 신청해 드리고 안 되면 제 돈으로라도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그만한 돈은 있어요. 개인 돈으로 해주면 내가 그걸 받을 것 같소?”
    “아이고 어르신! 노여움 푸십시오. 그 말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이웃집 진 씨도 가스 안전차단기를 달았다고 했다. 그 과정이 지금 소갈 씨가 겪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행정복지센터에 신청해놓고 소식이 없어 연락하면 내일, 모레, 내일, 모레 하는 사이 두 달이 지났다는 거다. 그래서 하루는 집에 다니러 온 아들에게 그 말을 했더니 시청 민원실로 전화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금방 나와서 달아 주더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접수증 해주시오”
    “네, 어르신 조금만 기다리시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담당 직원은 컴퓨터를 두드려 인쇄한 종이에 도장을 찍은 다음 소갈 씨에게 내민다.

    접수증
    본인은 2021년 6월 1일 15시 40분 「가스 타이머콕 신청사업」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신청받았음을 확인하며….
    접수 담당자 : 행복동 행정민원팀   (인)

    접수증을 들고 행정복지센터를 나오는 소갈 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아들 또래의 젊은이에게 화를 낸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