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수필] 불영사를 찾아서

2021-07-27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불영사를 찾아서
'글. 최명임'

 
    깊은 골에 바람이 어찌나 매몰찬지 준비 없이 찾아온 객을 내쫓기라도 하듯 등을 떠밀었다. 계곡물에 손이라도 씻고 가자고 차에서 내렸다. 하등의 관계도 없으련만, 기어코 된바람이 발걸음을 묶어버린다.
    금강소나무 숲은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안내판을 보고 되돌아오는 길이다. 주유소 기사님께 넋두리하였더니 멀리서 오신 손님을 내치지는 않을 테니 금강소나무 숲길 꼭 들러보고 가라 한다. 남편은 ‘다시 갈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고개를 저었다. 송림의 운치를 즐기지 못하고 가면 후회할 거라는 대단한 긍지와 울진의 넉넉한 인심을 대변하는 기사님의 한마디에 잠시 흔들렸지만, 우리의 불찰을 얼렁뚱땅 넘겨보자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그곳이 아니라도 좋다. 골짝마다 비바람에 견뎌온 소나무가 송림의 운치는 덜 할지라도 잡목에 섞여 군계일학의 면모답다. 잡목이라 했지만, 초록은 동색이라 그 어울림이 절대 허접하지 않다. 오랜 연륜과 창연한 모습에 감동하며 서운함을 툭 털어버렸다. 



    굽이진 도로를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불영사라 적힌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뭐지? 이 낯선 단어의 친근함은….’ 훅 지나버린 뒤에 떠오른 생각이 목성균 선생님의 ‘누비처네’에서 본 불영사다. 애당초 선생님의 불영사를 찾고픈 내 열망이 미리 정해 놓았던 것은 아닐까. ‘누비처네’를 읽으며 그 아릿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달가운 언어에 가슴 뻐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독한 장들이 쏟아져 나온 선생님의 글들은 생경한 향기였다. 아내를 대동하고 애마 엘란트라를 부리며 태백산맥을 넘어온 ‘불영사에서’란 수필은 그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다. 감히 그분을 닮고 싶다는 열망으로 단숨에 읽어버린 ‘누비처네’ 속의 한 여정을 따라나섰다. 37주년 결혼기념일에 얼떨결에 선생님의 불영사와 해후를 시도한 것이다.
    불영사 입구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생님도 여기 어디쯤 당신의 애마를 세우고 먼 길 달려온 여행객의 입장으로 마방 주인의 후한 인심을 맛보고 싶으셨을 거다. 마방 주인은 뵈지 않고 주막집 주인장이 허기에 지친 객을 맞았다. 스물넷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처녀와 스물여덟 팔팔한 총각이 저문 황혼 길에서 희끗희끗한 머리를 드러내고 환히 웃었다. 
    어느 노부부에게 젊음을 내어준다면 돌아가겠느냐고 누가 물었다. 아내는 단호하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불영교를 넘어서기 전에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얼음 알같이 맑은 물에 쭈뼛쭈뼛 자신을 비추고 있다. 속계와 선계의 경계에 서서 한 번쯤 흔들렸을 비구니가 마음을 훌훌 씻고 갔음직 한 불영교에서 우리 부부도 멈추어 섰다. 적어도 저 맑은 물에 마음 한 곳 씻고 건너야 하리라는 급조된 겸손으로.
    5월 훈풍이 대담하다. 선생님이 찾았던 계절의 적요함과 달리 오월의 바람으로 계곡은 전신에서 초록 비색을 발하고 있다. 청춘의 들뜬 회오리가 초목 사이를 비집고 그 싱그러운 공간에서 젊은 내외가 행복을 기기에 저장하고 있다. 대단한 일로 싸우게 되더라도 저렇게 쌓아둔 추억으로 흔쾌히 화해하리라. 선생님께는 처네 포대기가 있었듯이 나도 무엇 하나 단단히 있어 각다분한 세월 받아내고 지금 소소한 행복으로 선생님의 여정을 밟아보는 것이다.
    새로 불사를 한 전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각 앞에는 스님들의 고운 손으로 일구어낸 밭에 푸성귀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 오십 보 뒤에서 바라본 젊은 비구니 만질만질한 꼭뒤가 봄볕에 따가워 보인다. 불영 계곡의 이슬을 먹고 사는 그녀의 얼굴은 얼마나 맑고 고울까. 



    새 전각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본당이 자리하고 있다. 들러리 같은 새 요사채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와 본당의 고색창연한 풍채가 대조를 이룬다. 막 입문한 비구니의 불심처럼 저 고색창연함에 스며들지 못한 모습이 어쩐지 눈에 설다. 
    부처의 눈으로 보아야 부처가 보인다고 하였던가. 속세에 절은 눈으로 연못에 비친 부처님의 그림자를 찾으려니 아무래도 길이 없다. 대웅전 보이는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렸다. 
    선생님이 만난 초로의 신사 내외가 앉았던 벤치는 비어있다. 어느 낯선 도시에서 생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을까. 굳이 먼저 가셔야 했던 사정이 없었으면 나도 선생님을 뵐 수 있었으련만, 책으로 만난 인연이라도 간간 그분이 그립다. 
    그날 저문 산사의 분위기와 다르게 해가 막 중천을 비켜났다. 한낮의 열기로 마당 곳곳에 열화같이 꽃이 핀다. 세상 떠나신 뒤에 더욱 빛나는 선생님의 문향이 이곳에도 배어있다. 
    돌아 나오는 길 요사채 봉당에 새하얀 고무신이 정갈하기도 하다. 아까 본 그 여승의 신발일까. 눈이 부시도록 순결하다. 이번 생에 흔적 하나 거기에 두고 피안의 세계에서 노닐고 있으려나. 속진이 묻은 발이나마 신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늦가을 저물녘에 초로에 접어든 내외가 다정히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가는 풍경을 그려본다. 잠시 선계에서 놀다 떠나며 가슴 뻐근하셨을 그분처럼 나도 한바탕 마음을 씻고 떠난다. 동해로 떠난 선생님의 여정과는 달리 우리는 포항으로 애마를 재촉해 길을 떠났다. 그날 저녁 모둠회를 시켜놓고 남편은 소주 세 병으로 나는 소주 한잔으로 맛깔나게 대작하였다. 파닥거리는 오징어 회를 앞에 놓고 아내와 기꺼이 교작하셨을 선생님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