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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55번 버스를 타다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155번 버스를 타다
'글. 유병숙'

    155번 버스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올라탔다. 버스 안은 한산했다. 금호동 로터리를 지나니 2차선 도로가 나왔다. 멀리 금호극장이 보였다. 다 왔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이 차는 종점에서만 서요! 거기, 앉아있어요!” 목소리에 움찔한다. “저기가 우리 집인데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좀 내려주세요.” 대답이 없다. 버스는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종점이라니!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퍼뜩 잠이 깨었다. 또, 그 꿈이었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이제는 사라진 155번 버스가 며칠째 잠자리를 어수선하게 했다. 새벽 창을 열었다. 푸르스름한 빛 속에 연전에 다녀온 금호동의 풍광이 담겼다.
    그날 외당숙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언덕 위의 성당은 고풍스러운 옛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에서 나는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외당숙은 나의 대부였다. 장례를 마치고 성당 옆, 고인의 집에 들렀다. 외당숙모가 영정사진을 벽에 걸었다. 사진 속 핸섬하고 다정한 얼굴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성당 주일학교 교장이었던 그분의 후광을 믿고 철없이 으쓱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분의 넉넉했던 품이 그리웠다.  



    터덜거리며 언덕을 내려오다 모교인 금호초등학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학교도 교문도 작았다. 담에는 넝쿨장미가 한창이었다. 학교는 동네 친화적 리모델링으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교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더웠고, 겨울에는 얼어붙을 듯 추웠던 양철 지붕 교실을 나도 모르게 눈으로 찾았다. 내가 다녔던, 꽃고무신을 신고 운동장을 달리다 벗겨지곤 했던, 가방에 넣어 주겠다던 옥수수빵을 짝이 자기 가방에 슬쩍했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간 머슴아들을 잡으러 다니던, 철봉에 매달리면 동전이 우수수 쏟아지던, 구령대에 올라가 웅변을 하던 시절의 학교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견고하고 세련되게 변모한 모교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던 문방구,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던 떡볶이집은 낯선 건축물로 바뀌었다. 당시 금호동 2가는 부촌으로 불렸다. 층계 위에 대문이 있던 집들은 덩치가 크게 보였다. 외국인과 결혼한 유명 여배우의 으리으리한 집도 있었다. 무엇보다 큰길을 건너지 않아도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생 수가 포화상태였기에 금호동 1가에 살았던 우리네는 옥수나, 옥정초등학교로 쫓겨갈 위기에 놓였다. 사실 신축된 학교가 더 멀었다. 조마조마하며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로웠다.
    지하철 출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는 양옆으로 높다란 건물들이 펼쳐진 로터리에 서서 1가 쪽을 바라보았다. 아! 놀랍게도 아파트 군락이, 넓은 대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많던 판잣집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생경한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도 조금 더 버티었다면 저 아파트 어디께에 살지 않았을까? 마치 내가 환골탈태라도 한 듯 어깨가 펴졌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더듬더듬 옛 흔적을 찾아 나섰다. 정류장을 환하게 했던, 꿈의 궁전 금호극장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자리 잡았던 시장도 사라졌다. 골목 어귀에 있던 만화방도, 어머니가 가끔 들러 호빵을 사주었던 슈퍼마켓도, 대낮에도 빨간 불빛이 어른거리던 정육점도, 하굣길에 학생들의 공복을 자극하던 즉석 튀김집도, 너무 바투 잘라서 또래들의 입을 내밀게 했던 미장원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긴가 싶으면 아니었고, 저긴가 싶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깡그리 달라질 수 있을까? 당황한 걸음이 헛방을 놓았다. 우리 집은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리던 산꼭대기 바로 아래 있었기에 언제와도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장독대에 오르면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던 집이었다. 마음의 동선을 따라 발걸음이 자꾸만 위로, 위로 향했다.  
    나 살던 집이 여기 어디쯤일까? 아침이면 너도나도 불려 나와 골목을 쓸었고, 해거름이 되면 쓰레기통에는 연탄재가 쌓였다. 저녁때가 되면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골목을 떠들썩하게 했다. “노마야, 이놈아 얼른 들어와!” “승협이 어디에 있니! 죽 먹어라!” 호명 소리로 좁은 골목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는 용케도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로 더러워진 옷을 털며 의기양양 집으로 뛰어갔다. 어둑해져도 부르지 않으면 돌아가기 싫었다. 골목에 자욱했던 소리는 마치 고향의 언어처럼 때때로 나를 찾아와 가슴을 적셨다.
    골목은 음식 냄새를 감추지 못했다. 흥택이네서 기름 냄새를 풍기면 하나, 둘, 셋… 열을 세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박부침개 좀 드시래요.” 하며 흥택이가 접시를 들고 불쑥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 아랫집 경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녀석들은 저녁 먹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동생과 치고받고 떠드는 소리가 골목에 낭자했다. 시끄럽다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피아노 치는 동갑내기도 있었다. 그 애는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피아노를 쳐댔다. 그 애와는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이 꼭대기까지 어떻게 피아노를 들고 왔을까 궁금해 하다가, 이런 빈촌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쑥덕대었다. 피아노가 고가의 악기인지 그때는 몰랐다. 한 번은 그 집 앞을 지나다 피아노 연주에 이끌려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으로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 느꼈다. 그 후 피아노는 나의 로망이 되었고 연주 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는 버릇이 생겼다. 
    연탄가스에 질식해 동치미를 마시고 깨어난 어느 겨울 끝자락,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저기 저 집이 나왔는데, 글쎄 기름보일러를 땐단다. 우리 집보다 아주 비싸지만 저런 곳으로 이사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지?” 마루에는 유리문이 달려있었다. 그날 나는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께 꼭 그 집을 사드리겠다고 결심했었다.  
    추억이 아로새겨진 골목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가슴에 살고 있었던 풍경들은 그 근원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추억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진정 내가 찾고 싶은 건 무엇일까? 어디로 가야 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날 내 그림자는 하염없이 맴을 돌았다. 
155번 버스는 어쩌면 오늘 밤에도 나를 태우러 올지 모른다. 그날의 상실감이 지병처럼 날마다 나에게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