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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토마토 편집국장 이용원

2023-03-30

문화 문화놀이터


다음 세대 기록인
월간 토마토 편집국장 이용원
'농사를 짓듯 책을 짓는 월간 토마토'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책 짓는 사람 이용원입니다.
책을 ‘짓다’라고 하신 표현이 새로우면서도 묘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짓다’라는 동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관습적으로 우리 선조들이 ‘짓다’라는 동사 앞에 어떤 목적어를 썼는지 살펴보면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와 같은 것이 있어요. 다 의식주와 관련된 것들이죠. 그리고 ‘글을 짓다’라는 표현을 또 썼어요. ‘글짓기 대회’이지 ‘글쓰기 대회’는 아니었잖아요. 그렇게 보면 이 ‘짓다’라는 동사를 붙이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는 존엄성 내지는 고유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존엄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 앞에 ‘짓다’라는 것을 붙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점점 이 사회에 글 짓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잖아요. 그것은 큰 위기라고 생각해요. 글 짓는 사람이 따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보편타당하게 모두가 글을 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게 맞거든요. 글을 짓는 것은 사유가 바탕이 되는 고도의 지성 행위예요. 즉 생각하며 살자는 이야기이고, 옳고 그름은 무엇이며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행동이죠. 이것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본인의 삶의 목표와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고 산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짓다’라는 동사의 고귀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로 저는 ‘책을 짓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월간 토마토 편집국장 ‘이용원’


 ‘월간 토마토’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글 쓰는 일은 계속했었어요. 그러다 신문사를 다니면서 저에게는 호흡이 긴 작업이 더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매거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죠. 그 변화의 시기가 제 인생의 ‘중2병’이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귀결은 예술이더라고요.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술의 일상적 향유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라는 명제가 고민의 결과로서 나온 거죠. 그런데 제가 직접 예술가가 되어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그동안 제가 해왔던 일들을 매개로 예술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문화예술잡지’를 만들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기록’이라는 단어가 직관적으로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 그 나름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창간호부터 대전을 기록하는 ‘대전여지도’를 기획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래서 우리 기록을 통해 대전이라는 도시가 좀 더 활력 넘치고 즐거운 곳이 되기를 바랐어요. 문화예술의 일상적 감동이 있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요. 



 
첫 호가 기억나시나요? 그 에피소드가 궁금하네요.
    당연히 기억하죠. 어떻게 잊어버리겠어요. 개인적으로 창간 준비는 4~5년, 본격적인 준비는 10개월 정도였어요. 창간호 이전에 예비 호를 먼저 만들었는데 마지막까지 편집 디자이너를 구하지 못한 일이 있었어요. 당시 의기투합해서 같이 했던 멤버 중 학보사 출신 친구가 쿽(Quark Xpress)을 만져봤다기에 어쩔 수 없이 그가 편집 디자인을 맡게 되었죠. 그리고 제가 아는 편집 디자이너 실장님을 모셔서 그 친구와 다 같이 원데이 레슨을 받았어요. 편집의 기초부터 속성으로 배운 것이죠. 그렇게 나온 예비 호는 정말 처참했어요. 내부적으로 절대 배포하면 안되겠다 결정하고 그 실장님을 다시 불렀죠. 무엇이 문제인지 검토를 받고 두 달에 걸쳐 창간호가 나오게 되었어요. 지금은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때의 기준으로는 정말 잘 나왔어요. 내 손으로 만들어 낸 첫 잡지는 아이를 낳는 것처럼 기쁘고 설레는 일이었어요. 쉽게 잊혀지지 않죠. 
대전을 대전 그 자체로 기록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간 토마토는 그렇다면 대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대전이라는 도시는 역사가 짧은 곳이에요. 과거부터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 대전이라는 도시의 연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다른 지역보다는 다소 약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다 보니 저희처럼 지역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이 있어요. 굉장히 파편화된 도시거든요. 150만의 인구 중에서 단 1%만이라도 월간 토마토를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성과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느리지만 분명 그 수는 늘어나리라 생각하고요. 아직은 그렇게 큰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저희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주변에서는 고루한 종이 잡지보다는 이메일 서비스나 전자책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저희는 지금 이게 맞는 것 같거든요. 종이만큼 온전하고 안전한 기록 방법은 없어요. 지금 수많은 데이터가 디지털화되어 쌓이고 있지만 결국 원자폭탄 한번 떨어지면 복구할 수 없는 수준으로 훼손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곳곳에 뿌려진 월간 토마토는 타다 남을지언정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겠죠. 아직 종이를 대체할만한 완전한 기록물을 없다고 생각해서 저희는 이 가치를 고수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편집국장님이 생각하시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록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왜 기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혹은 사람과 다른 모든 개체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공유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을 기록해서 미래세대로 넘겨야 하는 이유도 이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서죠.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오는 단절은 수많은 문제를 초래해요.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 이후의 권위적 독재 정부 시절의 기록 단절 혹은 왜곡이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잖아요. 이야기가 공유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당대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지 못했고요. 그게 현실이에요. 그렇기에 당대에서의 이야기가 잘 공유될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은 같은 방향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우리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 필요해요.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의 시대를 잘 기록하고 이것을 미래에 전달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우리 마을, 도시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철저히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