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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루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자루
'글.박종희'

    튼실한 콩을 잔뜩 집어 먹고 배불뚝이가 되었던 자루에서 아침저녁으로 한 움큼씩 콩을 퍼내니 허리가 구부러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묶었다 풀었다 했더니 얼마 전부터는 살이 내렸다. 시름시름 기력을 잃더니 오늘은 아예 벌렁 드러누웠다.
    지난겨울 올케네 친정에서 무공해로 농사지었다며 검정콩을 보내왔다. 어렸을 때나 보았던 헝겊 자루에 가득 담긴 콩은 알이 고르고 반들반들했다. 시장에서 사다 먹는 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구수하고 맛있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베란다에 두고는 밥에 넣어 먹고 콩자반을 해 먹었다. 콩물이 몸에 좋다기에 푹 삶아 믹서기에 갈아 먹었더니 종일 든든하고 피부도 좋아졌다. 또, 지인을 만나는 날이면 주고 싶어 퍼 나르다 보니 어느새 자루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며칠을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애를 태우더니 이젠 속까지 탈탈 비워내고 늙은이의 뱃가죽처럼 쭈글쭈글하게 접혔다. 자루도 사람처럼 배가 불러야만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을 빈 자루를 털어 접으며 알았다.





    식탐이 많아 무엇이든 배불리 먹고 그 힘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자루를 보면 중학교 동창 Y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친구들과 같이 갔던 그녀의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골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녀의 어린 동생들이 흙 묻은 발로 뛰어나왔다. 기억으로는 고만고만한 동생들이 대여섯 명은 되었던 것 같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배가 불룩했다. 몸에 살이 붙어 통통한 것이 아니라 몸은 야위었는데도 올챙이처럼 배만 불룩하게 나온 것이 꼭 걸어 다니는 자루 같았다.
    벌써 40여 년이 지난 일이다. 그 시절엔 먹을 것이 흔치 않았다. 삼시 세끼 밥 굶지 않고 사는 일만도 큰일이었다. 지금이야 라면도 있고 빵도 있어 먹을게 흔하지만, 그때는 옥수수나 고구마, 감자가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아침에 밭에 나가시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쪄 놓고 간 감자는 이미 빈 바가지가 되어 파리가 들끓었다. 언니 친구들이 왔으니 혹시 과자라도 얻어먹을까 싶어 손가락을 빨며 친구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 동생들의 모습에서 허기진 자루를 보았다. 늘 먹는 감자나 옥수수로는 아이들의 위장이 채워지지 않았다. 한창 뛰어놀 나이니 금방 먹고 돌아서도 배고파한다고 했다.
    손가락을 빠는 동생들이 친구들 보기에 부끄러웠던지 그녀가 부엌으로 들어가 옥수수를 찌고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보리밥을 한 양푼 비벼왔다. 반찬이라곤 푹 익어 쉰내가 나는 열무김치와 고추장, 풋고추가 전부인데 동생들의 먹는 모습은 게걸스러웠다.





    서로 부딪히며 밥을 뜨는 숟가락이 닭싸움하는 것처럼 날카롭게 엉키더니 순식간에 양푼이 바닥을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가 먹는 양푼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그만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친구는 몰려온 동생들한테 소리 지르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창피해 어쩔 줄 몰라했지만, 아이들은 언니의 무서운 눈초리도 아랑곳없이 달려들었다. 허겁지겁 퍼먹고도 양이 덜 찼는지 숟가락을 입에 물고 빈 양푼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아이들을 많이 낳았던지. 아이러니하게도 없는 집에 형제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 육칠 남매 정도는 되었지만, 친구네 집은 여섯 명의 동생이 있고 위로 언니, 오빠가 셋이나 되었으니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어린 시절 친정집 윗방에도 서너 개의 곡식 자루가 있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삼시 세끼를 먹는 쌀이 한 달에 한 가마니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월급날이면 우리 집 윗방에서도 소리 없는 잔치가 벌어졌다. 빈 자루들이 포식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끼니때마다 퍼내던 쌀자루가 야위어 갈수록 어린 자식들의 위는 늘어만 갔다. 자루가 바닥날까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허리는 자식들이 다 자라도록 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부모님의 허리가 자루였다는 것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루마다 크기가 다르듯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위장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고 한다. 위장은 다른 기관과는 달리 탄력이 있어 과식하면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고 보면 평생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루인 것 같다.
    까다롭게 음식 투정하던 어린 시절엔 나이 들면 밥 먹는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던 말이 무슨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그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 같다. 한 끼라도 지나치면 금방 배가 졸아붙고 허리가 구부러진다. 축 늘어진 자루처럼 힘이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현기증이 난다. 그러다 보니 나는 틈만 나면 먹을 것을 챙겨 자루에 힘을 실어준다.
    무엇이든 잔뜩 집어먹고 엉덩이가 무거워 바닥에 주저앉기를 좋아하는 자루처럼 사람의 몸도 나이를 먹을수록 두루뭉술해진다. 중년이 된 내 위장도 펑퍼짐해져 간다. 요즘은 식성이 변해 안 먹던 음식에도 곧잘 손이 간다. 덕분에 몸이 무거워지고 전형적인 중년 여인의 모습이 되어 가는 중이다.
    어느새 콩 한 말을 비워낸 속 좋은 자루가 위장을 다 내놓고 누워버린 것을 보며 새삼 내 허리를 만져본다. 그간 삼킨 콩이 모두 내 허리에 와서 붙은 느낌이다. 내일은 또 허기진 자루에 무엇을 채워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배가 부르다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