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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흠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흠
'글. 박종희'

    큰 맘먹고 사들여 귀한 대접을 받던 접시에 이가 빠졌다. 흰 바탕에 자잘한 꽃이 수 놓인 뷔페 접시는 한때 우리 집 식탁을 장식하며 지인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언제 깨졌을까. 상처는 경각심을 갖게 해 자꾸 지난날을 상기하게 된다. 
    젊었을 때 같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쓰레기통에 넣었을 접시를 씻어 건조기에 올려 놓았다. 깨진 부분이 가려진 채 다소곳하게 놓여 있는 접시가 30여 년 전 그날로 나를 데리고 간다.
    신혼 때 김치를 담그다가 손가락을 심하게 베였다. 남편이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를 하려고 오이를 써는데 칼날이 오이와 싸잡아 초보 새댁의 손가락까지 넘본 것이다. 예리한 칼날이 손가락을 스치는 순간 섬뜩하게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졌다. 아주 짧은 순간, 찌르는 듯한 아픔에 칼을 떼었을 때는 이미 도마 위에 피가 흥건하고. 오이의 연둣빛 속 살로 선홍색 피가 스며들었다.



    어쩐지, 전날 남편이 숫돌에 번지르르하게 갈아준 칼날이 그날따라 매섭도록 빛이 나더라니. 피가 떨어지는 손가락을 행주로 감싸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실은 얼마나 베었는지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얼마쯤 흘렀을까. 퇴근한 남편의 잔소리를 귀에 걸고 응급실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덜렁거리는 살점을 핀셋으로 들추어 보였다. 상처가 깊어 혹시 끊어졌을지 모를 신경을 확인하기 위해 마취 없이 꿰매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더럭 겁이 났다. 짧은 그 순간,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남편의 얼굴도 하얗게 질린 듯했다.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그때는 정말 마취도 않고 봉합을 했다. 한 바늘 한 바늘 꿰맬 때마다 이를 악물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쇼크가 일어났다. 슬쩍 스친 것 같은데 어쩌면 그렇게 많이 베었는지. 열다섯 바늘이나 꿰매고 퉁퉁 부은 손가락이 아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얼마나 아프던지, 그날의 통증을 생각하면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금니가 맞물리며 기분이 으스스해진다. 
    손가락에 꿰맨 흔적이 신혼의 역사를 말해주듯 그릇에 생긴 흠을 보면 지나온 세월이 웅성거린다. 식탁에서 같이 웃고 울었던 내밀한 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고상한 품격이 느껴지는 뷔페 접시는 안이 움푹하고 넓어 손님맞이 상차림에 잘 어울렸다.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고 집들이할 때도 들떠 있는 내 마음만큼이나 손님상의 격을 치켜세웠다. 일 년에 서너 번 가족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식탁을 빛내주었고. 딸애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던 날에는 뜨거운 버섯 탕수육에 기꺼이 몸을 내어주며 격하게 축하해 주었다.
    나와 함께 하는 세월 동안 어디 좋은 일만 있었을까. 한편으로는 오기가 날 만큼 서러울 때도 있었으리라. 삶에 배신당해 이유 없이 우울한 날에는 음식물 찌꺼기들과 엉켜 냄새나는 설거지통에서 나뒹굴고, 유행에 따라 충동적으로 사들이는 그릇 때문에 영문도 모른 체 싱크대 구석에 갇히기도 했다. 
    하나, 날씨처럼 갈마드는 변덕스러움에 다시 식탁으로 나오기도 했다. 한 여름 뙤약볕을 보약처럼 받아먹고 자란 늙은 호박으로 튀김을 했는데 예쁘게 플레이팅 할 접시가 필요했다. 서랍에서 접시를 꺼내니 툴툴거리며 순하게 굴지 않아 손끝에서 두세 번 놓쳤는데 아마 그때 이가 빠진 모양이다. 
    나이가 든다는 증거일까. 까탈스럽고 과민하던 성격이 둥글어지며 소탈해졌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요즘은 물건에 하자가 있어도 대충 넘어가고. 애지중지 아끼던 것들에 흠집이 생겨도 그러려니 한다. 아니, 외려 흠이 있는 것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오래 써서 움푹 파인 나무 도마를 버리지 못하고, 내 손아귀에 눌려 도파가 닳아버린 칼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이 빠진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부려먹는지도 모르겠다. 
    그릇도 사람처럼 부딪히고 상처 받으면 단단해지던가. 손에 익어 만만해서인지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불만이 없다. 잘 나가며 대접받던 시절을 생각하면 한 번씩 성을 낼만도 한데.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걸 보면 상처에 내성이 생기듯 모난 부분이 물살과 어울리며 둥글어졌기 때문일 게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고통의 시간을 무던히 견디어낸 상처는 이제 희미하게 흔적만 남았다. 30여 년 간, 손가락을 베이고 나서도 얼마나 많은 일을 겪고 살았던가. 돌이켜보면 내 것은 모두 손이 이루어냈다. 내 몸에서 가장 수더분하고 만만한 손을 부려 딸애를 키우고 집안을 일구고 내 집을 장만했다. 다친 손가락에서 새살이 돋는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동안에도 꾀부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손의 모습은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만큼 존경스러웠다.
    스치고 부딪히며 숱한 상처로 생긴 흔적도 내 몸의 일부다. 한때는 흉하고 창피해 손가락을 구부려 숨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상처로 생긴 마음의 굳은살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아 개운해진 접시를 다시 만져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가 아무것이나 막 담는다고 서운해하지 말아라. 만만하게 여긴다는 것은 가장 믿음직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란다.”
    *도파: 칼을 안전하게 쥘 수 있도록 칼의 한쪽 끝에 나무나 금속 따위를 덧붙여 만든 손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