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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희로애락이 깃들 때, 우리는 울고 웃었다

2022-01-21

문화 문화놀이터


길 위에서 보물 찾기
소리에 희로애락이 깃들 때, 우리는 울고 웃었다
'남도 소릿길에서 듣는 우리 가락'

    예부터 전라도는 예인의 고장이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빼어난 기량을 가진 예인이 많은 까닭이다. 구성진 가락은 고단한 일상을 잠시 잊게 했고, 풍성한 이야깃거리와 소리꾼의 재담 그리고 혼신을 다한 소리는 우리 민족을 울리고 웃겼다. 이런 전통적, 예술적 가치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그 소리를 잇는 소릿길 위에 선다.  
소릿길, 남도를 구성진 소리로 잇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김명곤 분)이 딸 송화(오정해 분)에게 하는 말처럼 판소리는 전승 지역에 따라 동·서 편제로 나뉜다. 동편제는 호남 동부 지역인 남원·구례·순창 등에서 발달한 소리제이고, 서편제는 호남 서남부 지역인 고창·광주·나주·보성 등지에서 발달한 소리제이다.
 
달나라의 궁전을 닮았다는 보물 남원 광한루, 광한루를 포함한 이 일대는 명승 광한루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우리 고유의 소리를 연결하는 여행코스 ‘소릿길’을 내놓았다. 소릿길은 동·서편제로 나뉘는 판소리에 국한하지 않는다. 민요·단가·잡가·노동요 등을 포함하는 남도의 모든 소리를 찾아 나선다. 소릿길은 광범위한 지역 으로 뻗어 있다. 권역별로 코스를 나눈 이유이다.
    1코스는 전라북도, 2코스는 전라남도 지역이다. 1코스 전라북도 지역은 예향의 고장 전주와 호남 좌도농악을 대표하는 필봉 농악의 본고장 임실, 동편제 탯자리가 있는 남원, 판소리를 이론적으로 확립시킨 고창이 중심이다. 2코스 전라남도 지역은 아름다운 다도해를 배경으로 해양문화를 꽃피운 목포, 민속예술의 보배섬 진도, 한반도의 땅끝 해남으로 이어진다. 
춘향과 몽룡 일색이어라, 사랑의 도시, 남원
    판소리 다섯 마당이 있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춘향가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다룬 것으로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남원은 춘향으로 시작해 몽룡으로 끝난다. 과연 춘향과 몽룡 일색인 도시이다. 남원을 관통하는 17번 국도변에 있는 오리정(전북 문화재자료)도 그렇다. 춘향전에서 오리정은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을 춘향이 배웅한 곳으로 묘사된다.
 
남원시 봉운읍 화수리에 자리한 국악의 성지

    <춘향가> ‘오리정’ 대목이다. “그때여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허는디, 향단이 술상하나 차리여라. 도련님 가시는디 오리정으로 전송가자. 술상채려 향단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동림 숲속으로 울며불며 나가는디.” 오리정이 애끓는 이별의 무대라면, 춘향과 몽룡이 처음 만난 무대는 광한루원이다. 오리정에서 시내 방향으로 10km 거리에 있다. 
    광한루는 황희가 태종의 ‘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하다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누각이다. 원래 이름은 ‘광통루’ 이다. 시간이 흘러 세종 16년(1434)에 중건한 이후 정인지가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닮았 다 해 ‘광한루’라 고쳐 불렀다. 광한루가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431년 이후이다.
    그 당시 부사 장의국이 광한루 앞에 흐르는 요천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놓았다. 또한 연못에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인공섬으로 조성해 놓았다. 각각의 섬에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영주 산에는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영주각이 소담하게 자리 하고, 방장산에는 팔작지붕을 얹은 방장정이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 같이 당대 최고의 누각인 광한루는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당시 누각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 것은 인조 16년(1638)에 복원한 것 이다. 광한루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당했던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다. 일제가 누각 마루 위는 재판소로, 누각 마루 밑은 감옥으로 사용한 것이다.
 
左)춘향과 몽룡이 이별한 오리정    右)삼신산에 바라본 광한루

    오작교를 건너면 왼편에 완월정이 반긴다. 광한루원을 확장하면서 1971년 세운 수중 2층 누각이다. 광한루가 달나라의 궁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지상의 사람이 달나라를 즐긴다는 뜻을 담았다. 해마다 춘향제 공연 무대로 활용된다. 그 외에도 광한루원에는 춘향과 몽룡이 백년 가약을 맺은 월매집, 남원의 유지들과 권번 기생들이 성금을 모아 지은 춘향사당 등이 있다.
광한루원은 남쪽 정문 외에 서문, 북문이 더 있다. 그중 북문으로 나서면 한옥의 아름다움이 깃든 호텔 남원예촌과 ‘안숙선 명창의 여정’으로 연결된다. 전시관에는 안숙선(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     병창 보유자) 명창의 소리 인생을 연대순으로 확인하고 남원의 판소리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다. 안숙선 명창이 남원 산동면 출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원의 소릿길은 지리산에 안긴 듯한 운봉읍으로 스며든다. 지리산 둘레길 운봉~인월 구간 중간 쉼터이기도 한 이 곳에 송흥록의 생가가 있다. 가왕이라 칭송받는 송흥록은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명창으로 당시의 모든 판소리를 집대성했으며 동편제 창법을 창시했다.
    그의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을 동편제 탯자리라 부르는 이유이다. 생가 마당에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 대목이 마당을 휘감는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정막 옥방의 찬 자리여, 생각나는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봤으니.” 
 
左)송흥록의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은 동편제 탯자리이다.  
中)고창 신재효 고택에 판소리를 배우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右) 가왕으로 칭송받는 송흥록의 동상
 
소리가 예술이 되고 삶의 애환을 담다
    남원에 동편제 가왕 송흥록이 있다면, 서편제에 뿌리를 둔 고창에는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이 있다. 선생은 중인 출신으로 고창 관아의 아전이었다. 따라서 판소리 와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판소리 여섯 마당의 집성가이자, 연출가 그리고 광대의 지휘자로 불린다. 그 배경에는 향리였던 그가 이방, 호장 등을 지내면서 소리꾼을 연회에 섭외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인데, 판소리를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쏟기 시작한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 그는 곡식 1,000석을 추 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였기에 경제적 뒷받침도 가능했다. 그 결과 자신의 집에 노래청을 짓고 수 많은 제자를 키웠으며 그중 다수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다. 그 당시에는 파격이라 할 수 있는 여성 소리꾼을 발굴했다.
    현재 신재효 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사랑채만 재현해 놓았다. 눈여겨볼 것은 원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다는 점. 건축 당시 모두 원기둥이었으나, 암행어사 어윤중에게 신분에 맞게 사각기둥으로 고칠 것을 지적받은 뒤 사각기둥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런 일화에 비추어 보아 선생은 신 분상의 현실적 고뇌가 많았을 것이다. 그가 판소리의 대부가 된 배경에는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 아닐까.
    전라북도에서 시작한 소릿길은 전라남도 진도로 연결된다. 예로부터 진도는 민속의 보고라 했다. 섬은 고립에 따른 외로움과 거친 바다를 터전 삼아야 하는 두려움이 뒤엉켜 있다. 그러나 진도 사람들은 섬이라는 그 같은 난관이 밀려올 때마다 쉽게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민속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흔적이 ‘진도아리랑’ 노랫말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응응으 응 아라리가 났네.”
    망망한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선창과 후렴을 주고받는 소리꾼의 모습에서 함께하지 않으면 고단한 삶을 이겨낼 수 없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묻어 난다. 또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이승에 맺힌 원한을 씻어 주는 진도씻김굿(국가무형문화재)도 빼놓을 수 없다.
    진도 씻김굿은 단순히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 아니다. 유족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살아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조차 위로한다. 진도에서 우리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국립남도국악원, 진도향토문화회관, 진도아리랑체험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