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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일렁이는 봄의 절정, 물길따라 샘솟은 푸르른 추억은 방울방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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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일렁이는 봄의 절정, 물길따라 샘솟은 푸르른 추억은 방울방울
'물의 나라 충북 - 충북의 물길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다(괴산Ⅱ)'

    조령 3관문 아래 새재계곡이 복사꽃 피어 환하다. 수옥폭포는 샘솟는 봄의 기운으로 사람들을 생동하게 했다. 이무기 살 것 같았던 삼풍지풍의 추억은 갈매실 초록의 추억으로 이어져 푸르게 빛난다. 분지천 냇물 옆 ‘토끼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던 분지리 사람들 옛이야기가 그윽하다. 주진천이 품고 흐르는 ‘동고사’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살구꽃 계곡, 칠성면 행목동천의 으뜸 풍경, 소금강을 지난 물길은 연풍면에서 흘러온 쌍천과 만나 더 큰 물줄기인 달천을 향해 흐른다.  

 
행목동천(쌍곡계곡) 하류. 쌍천과 만나기 바로 전 행목동천(쌍곡계곡). 저 산골짜기를 굽이치며 행목동천은 흘러왔다.
 
복사꽃 핀 새재 계곡에서 수옥폭포까지, 샘솟아 타오르는 봄
    봄도 세서 억세다. ‘이 억센 가슴을 어디에 쓰랴/더딘 봄날 푸진 햇살만/등줄기에 따사운데 잠 덜 깬 연이는 나를 수줍게 웃네/이 억센 가슴을 어디에 쓰랴/부엉이가 울고 여울이 울고/여울 속에서 이무기 울고/새벽하늘 성근 별 헛헛한 가슴’ 신경림 시인의 시 <새재>의 시구로 만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새재, 조령 3관문 아래 조령산자연휴양림 계곡을 걸었다. 
    마른 계곡 작은 물가 한 그루 개복숭아나무에 복사꽃이 끝물이다. 불꽃처럼 타올랐던 사랑이 더디게 진다. 그 앞에서 ‘찔레꽃이 피기 전에 돌아가리라’던 신경림 시인의 시구를 흥얼거렸다. 아직도 피지 않은 사랑이 남았는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쌍천이 되어 흐르다 달천을 만나서 충주시 수주팔봉 앞을 지나 남한강에 몸을 섞는 원풍천의 시원이 새재다. 새재에서 흘러내린 작은 물줄기가 조령산자연휴양림을 지나 수옥정저수지에 고였다 수옥폭포로 떨어진다. 
    20m 수직 낙하, 마른 대지를 적시는 폭포수는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샘솟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기며 폭포 앞에 섰다. 타오르는 신록은 불꽃보다 빛난다. 산이 온통 연둣빛으로 일렁인다. 가슴에서 무엇인가 샘솟고 타올랐다. 수주팔봉 앞 ‘물도리 마을’ 찔레꽃은 올봄에도 피었겠지.  

 
左) 수옥정에서 본 수옥폭포      右) 갈매실과 갈매실다리
 
이무기 살 것 같았던 삼풍지풍, 초록이 짙어 부른 이름 갈매실
    수옥폭포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용성골계곡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하나 되어 흐르는 원풍천 옆 길가 숲 바위절벽에 미륵불(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보물)이 새겨져 있다. 12m 높이의 수직 절벽에 두 불상을 새긴 것이다. 두 개의 불상을 새긴 것이 희귀하다는 안내판의 설명보다 마음을 끄는 건 불상을 새긴 바위 절벽 꼭대기에 자란 작은 나무 한 그루였다. 주변 나무는 연둣빛 새잎을 피웠는데 그 나무만 한겨울이다. 늦봄처럼 늦게 잎을 피울까? 말라죽어서도 저렇게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일까? 화두를 안고 원풍천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개울은 한지체험박물관 뒤편을 지나 삼풍지풍으로 흘렀다. 연풍면소재지 ‘호소사열녀각’ 북쪽에 흐르는 원풍천을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갈매실이라고 불렀다. ‘갈매’란 짙은 초록빛을 말하고, ‘실’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 또는 마을을 이르는 말이니, 갈매실은 초록이 짙은 마을, 또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삼풍지풍은 갈매실 상류다. 삼풍지풍을 산굼둠벙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굼둠벙은 산기슭 웅덩이다.  
    갈매실과 삼풍지풍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여름 내내 그 냇물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아이들은 주로 갈매실다리 주변에서 놀았는데, 머리 굵은 형들은 삼풍지풍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삼풍지풍 물빛은 개울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퍼런 초록빛이었다. 산기슭 움푹 파인 바위의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곳에 괴물이 산다느니 이무기가 산다느니 떠도는 말은 많았지만, 누구도 그곳에서 그런 것들을 본 일은 없었다. 
분지천과 주진천 상류에 이르다
    갈매실다리를 뒤로하고 ‘호소사열녀각’ 앞을 지난다. 조선시대 정묘호란 때 전장까지 찾아가 남편의 시신을 찾아 고생 끝에 고향인 연풍면 유상리 요동 마을 뒷산에 묻고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한 이근립의 처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200년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호소사열녀각’ 옆을 지키고 있다. 
    그곳을 지나 도착한 곳은 분지리였다. 1,000m가 넘는 백화산을 중심으로 곰틀봉, 이만봉, 황학산, 갈미봉, 조봉 등 600~900m가 넘는 산들이 둘러싼 마을. 마을로 들어오는 외줄기 길 옆으로 분지천이 흐른다. 그 길을 거슬러 오르다 자갈바닥 맑게 비치는 개울에 떠다니는 꽃잎을 보았다. 생활의 편린도 그곳에서는 반짝였다. 
    옛날에는 산에 ‘숯산판’이 많았다시며 마을의 산을 바라보시는 아저씨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산판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드는 숯가마가 산 여기저기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 아이들은 직선거리로도 6㎞가 넘는 연풍초등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지금 같은 넓은 길도 없어 분지천 개울가 토끼길이 학교 가는 길이었다. 

 
분지천


    산이 높아 골이 깊은 분지리는 해거름이 짧다. 산그림자 등에 지고 돌아나가는 길, 분지천 개울가 토끼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아이 하나 있을 것만 같았다. 
    은티 마을은 시루봉, 희양산, 구왕봉, 악휘봉, 마분봉 등 700~9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두 물줄기가 마을로 흘러내린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음양의 이치를 맞추기 위해 골 깊은 마을,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남근석을 세웠다. 마을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동고사(마을제사)의 전통이 이어진다. 마을을 둘러싼 산줄기에 있는 은티재, 지름재, 국사봉에서 제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마을에 내려와 제를 올린다. 동고사가 다 끝나면 마을 사람들의 잔치가 이어진다.  
쌍천으로 모인 연풍의 물줄기, 칠성에서 행목동천을 만나다
    분지리 이야기를 싣고 흘러온 분지천과 은티마을 이야기를 품고 흘러온 주진천이 주진교 부근에서 만나 쌍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쌍천은 새재에서 흘러내려 수옥폭포와 바위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 앞을 차례로 지난 원풍천을 흡수하여 흐르다 ‘호소사열녀각’ 이야기에 나오는 요동마을에서 흘러온 냇물까지 받아들여 금대마을 앞을 지나 외쌍유원지에 이른다. 칠성면 쌍곡리, 태성리, 비도리가 경계를 나누는 외쌍유원지는 쌍곡리를 지나온 행목동천(쌍곡계곡)과 쌍천이 만나는 합수지점이기도 하다. 

 
左) 행목동천(쌍곡계곡) 소금강. 냇가로 내려가서 본 풍경.    右)은티마을 남근석


    너른 냇물 옆에 그만큼 너른 자갈밭이 펼쳐졌다. 낮은 다리를 건너 자갈밭을 걸었다. 아까부터 아주머니 두 분이 허리 숙여 무언가 줍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물어봤더니 개울가에 피어난 쑥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쑥으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노나 먹겠다신다. 쑥을 뜯는 손길마다 함께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아주머니들 마음이 새재 아래 작은 계곡을 빛내던 꽃처럼 고왔다. 
    아주머니들의 그 마음을 헤아리며 행목동천을 거슬러 올랐다. 행목동천(杏木洞川)의 ‘행목’은 살구나무다. 살구나무꽃 핀 계곡, 행목동천은 무릉도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호룡소의 짙은 초록빛 웅덩이 가 여울이 반짝인다. 여울에 자라는 나무에 연둣빛 물이 한창이다. 물 건너 절벽에 붉은 꽃이 매달려 피었다. 
    행목동천 풍경의 절정을 소금강에서 보았다. 수직으로 우뚝 솟은 바위절벽이 줄지어 이어지고 그 아래 냇물이 흐른다. 절벽에 나무들이 성기게 자랐다. 여울 소리가 절벽에 묻혀 낮은 곳에서 공명한다. 절벽이 품은 공간이 밀도 높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