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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주간지 K-공감
60세 이상이 만들고 65세 이상은 할인!
'인생 백반 드셔보실래요?'

도로도 대중교통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오전 8시, 민정순 씨(72)와 고금자 씨(65)도 출근길에 오른다. 도보로 이동하는 민 씨와 버스로 움직이는 고 씨의 목적지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식당 ‘인생100반’이다. 두 사람은 2023년 11월부터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인생100반에서는 4~6명이 한 조가 돼 총 다섯 개 조가 순환 근무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하니 한 조가 일주일에 하루씩 맡고 있는 셈이다. 2024년 1월까지는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2시에 문을 닫지만 2024년 2월부터는 오후 7시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인생100반’ 이름에는 백반집을 달리 표현한 동시에 ‘백세 시대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정순(왼쪽) 씨와 고금자 씨는 ‘인생100반’에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모든 메뉴 8000원, 65세 이상 1000원 할인
2023년 10월 30일 문을 연 인생100반은 60세 이상 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시장형 어르신 일자리 사업이다. 영등포구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것으로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인 영등포시니어클럽이 관리하고 있다. 인생100반은 저소득 어르신 급식지원 사업인 ‘동행식당’과도 연계돼 있다. 서울시는 민간 식당을 동행식당으로 지정하고 대상자에게 하루 8000원짜리 식권을 제공해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배달 서비스도 한다. 이를 통해 배달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효과까지 얻는다.
12월 14일 비가 내려 어둑한 점심시간에 인생100반을 찾았다. 보통 때라면 손님들이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추운 날씨 탓에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과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골목 안쪽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있다.

직원들이 직접 만든 제육정식 (사진. C영상미디어)



메뉴는 산들비빔밥, 제육정식, 된장찌개 정식, 만둣국 등이다. 가격은 8000원으로 모두 동일하고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무조건 1000원을 할인해준다. 메인 메뉴는 물론 곁들여 나오는 밑반찬과 국 등 모든 음식을 직원들이 직접 만든다. 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까지 손수 빚는다. 음식마다 어르신들의 손맛과 정성이 들어가 있다.
육개장과 제육정식, 만둣국을 시켜 먹었다. 모두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한 것이 집밥 같았다. 직원들은 “내 가족이 먹는다 생각하고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 하나라도 탈 나면 큰일이지 않나. 늘 정갈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 책임감이 제일 큰 것 같다”는 것이 민 씨의 설명이다.
민 씨와 고 씨는 4~5년 전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두 사람 모두 독거 어르신을 위한 무료 도시락 봉사를 하다 인생100반 소식을 들었다.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만 하다 뒤늦게 새로운 도전을 한 두 사람은 출근하는 목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고 씨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 버스로 오가며 보이는 풍경도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더 자주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 씨도 “나오는 날만 기다린다”며 맞장구쳤다.
평소 ‘손맛이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인 데다 요리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인생100반은 꼭 맞는 일터다. 그러나 가족들은 출근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민 씨는 “남편은 나더러 젊었을 때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젠 좀 쉬는 게 어떠냐고 한다. 근데 오히려 일을 해야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고 씨는 “아들이 ‘엄마 일하다가 아프면 병원비가 더 든다’면서 말리는데 퇴직한 남편보다 내가 훨씬 건강하다. 지금껏 병원에서 약을 타 먹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일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100반 직원들이 주문 받은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일터는 인생 활력소
민 씨와 고 씨가 포함된 조는 모두 네 명이다. 재료 손질, 조리, 설거지 등 업무를 분담한 덕에 좁은 주방도 문제없다. 젊은 시절 가스 불 사고를 목격한 민 씨는 불 앞에 서기를 어려워한다. 대신 나물무침을 도맡아 한다. 고 씨는 볶음이나 탕 요리에 자신 있다. 한 손님이 제육정식을 주문하자 곧장 고 씨가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육은 내 담당”이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메뉴는 변함 없지만 맛이 조금씩 다를 순 있다. 조별로 돌아가다 보니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육수 팀’을 꾸렸다. 민 씨는 “곧 육수 팀이 도착한다. 각자 육수를 만들었더니 어떤 날은 짜고 어떤 날은 싱겁더라. 육수 팀을 만들어서 육수를 통일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 일이 처음이다. 손님들의 반응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텅 빈 그릇이 돌아오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잔반이 많은 날은 고민이다. 이날처럼 손님이 적은 날도 걱정거리다. 민 씨는 “우리가 힘들더라도 손님이 많고 바쁜 것이 좋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생100반에 오라고 홍보한다”고 말했다.
폐점 시간이 가까워지면 직원들은 다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이 시간 또한 직원들에게 활력소가 돼준다. ‘오늘따라 밥솥에 누룽지가 많이 붙었다’, ‘2월 여행은 어느 곳이 좋겠다’ 등 일주일간 밀린 수다가 이어진다. “집에서 우두커니 있으면 뭐하겠나. 이렇게 나와서 일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난다”는 것이 민 씨의 얘기다. 고 씨는 “2월 말에 베트남 여행을 가려고 한다. 일하다 잠깐 놀러 가니 두 배, 세 배로 더 재밌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 씨와 고 씨는 “나이 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노인들도 사회에 나와 어울리며 힘을 보탤 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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