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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물 산책

2024-03-21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구루물 산책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1. 운천동의 지명 유래
    운천동은 본래 청주목 서주내면의 지역으로 큰 우물이 있으므로 구루물 또는 운천(雲泉)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ㆍ폐합하면서 옆 마을인 산직리, 하봉리, 상봉리, 연당리, 사창리의 일부와 북주내면의 외덕리의 일부를 아울러 운천리라해서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35년에 사주면이 청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운천리는 운천동이 되었다. 
운천은 구루물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조선 영조 때 간행된 지리지인『여지도서』에서 운천 마을에 대한 기록을 처음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충청도 청주목 방리(坊里; 마을이라는 뜻) 조에 서주내면에 속한 마을로 운천리(雲泉里)가 나오는데 오늘날의 시청에 해당하는 관아에서 서쪽으로 3리 떨어져 있으며, 편호는 12호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흥덕사지 일대인 연당리(蓮塘里)도 관아에서 서쪽으로 3리 떨어져 있는데 편호는 16호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산직리와 하봉리, 상봉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들 마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천동에는 1984년에 택지개발사업으로 천지개벽하기 전까지 산직, 하봉, 상봉, 연당 마을이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산직 마을은 산정말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의 진양아파트와 세원아파트 일대로 ‘산정마을어린이공원’에서 옛 지명의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다. 상봉리는 산직리 북쪽에 있었고, 하봉리는 지금의 흥덕사지 주변이다. 연당리는 하봉 마을 동쪽에 있던 마을로 지금의 운리단길 남쪽 택지이다.1970년에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한국지명총람』에는 운천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운천동(雲泉洞) :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의 지역으로서 큰 우물이 있으므로 구루물 또는 운천(雲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산직리(山直里), 하봉리(下鳳里), 사창리(司倉里)의 각 일부와 북주내면의 외덕리(外德里) 일부를 병합하여 운천리(雲泉里)라 해서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에 다시 청주읍(청주시)에 편입되어 운천동이 됨.」
    그런데 위 기록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이 책이 간행된 1970년에는 이미 구루물과 운천, 미륵당과 용화사터로 소개한 곳은 운천동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루물 마을 즉 운천리는 어디일까? 그 해답은 1910년도에 측량하여 1912년에 발행된 지형도를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

 
1만분의 1 지형도(1910년 측도, 1912년 발행)   




    청주 원도심인 청주읍성 서편을 끼고 구불구불 북쪽으로 흐르는 무심천 서쪽에 사창리와 운천리·연당리·산직리가 차례로 자리하고 그 서쪽에 하봉리와 상봉리가 자리하였다. 당시 무심천은 산직리 앞에서 동쪽으로 크게 휘돌아 지금의 내덕동에 위치하는 덕벌초등학교와 중앙중학교를 감싸고 흘렀다. 즉 덕벌초교 삼거리까지 본래 산직리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운천동에 속하였다가 1920년대에 무심천 제방이 직선화되면서 이 지역은 외덕리 즉 지금의 내덕동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리고 삼일브리제하임아파트 자리는 1968년 11월 7일 충북선 선형개량으로 청주역이 자리하였다가 1980년 10월 17일에 복선 전철화하면서 다시 옛 정봉역으로 이전해 가고 역사를 개조하여 MBC방송국이 2006년 10월까지 이용했었다. 따라서 오랜 역사 속에서는 이곳까지가 본래 운천동이었던 것이다.
    그럼 운천리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운천동에는 운천리가 없었다. 운천리는 남쪽은 사창리, 북쪽은 연당리, 서쪽은 천수동·내수동에 접하고 동쪽은 무심천에 접하였던 마을이다. 마을에는 1902년에 창건된 용화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운천리·연당리·하봉리·상봉리·산직리 등 5개 마을을 하나로 합쳐 통합 명칭으로 운천리라 했다가 청주읍 승격으로 운천동이 되었다. 그런데 1963년에 사창동과 운천동의 일부를 떼어 붙여 사직동이 되었다. 본래 운천동의 중심이며 마을이름의 본거지였던 운천리 지역은 엉뚱하게도 사직동이 되고, 나머지 연당리·하봉리·상봉리·산직리 지역만 운천동에 남은 것이다. 주객전도란 말이 여기에 딱 어울릴 듯하다. 운천리의 본향이었던 사직동은 현재 재개발사업이 본격 시작되어 용화사 주변은 이미 건물 철거가 끝나고 문화재 발굴조사 중이고, 사운로 서편은 대부분 이주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재개발 후에라도 사직동 속에서 운천리 마을이름이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부강아파트 전경 매몰된 ‘구루물’터



    또 하나의 의문인 운천동 마을이름의 근원인 구루물은 어디에 있었을까? 구루물은 우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구름이 많이 끼는 샘이라 해서 한자로 구름‘운(雲)’자에 샘 ‘천(泉)’자를 썼지만 어학적인 해석으로는 ‘큰 우물’이 와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우물의 규모가 꽤 커서 ‘큰 우물’이라 부르던 것이 ‘구루물’이 되고 한자로 ‘운천’이라 표기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구루물 즉 운천은 지금 사직동 어디에 남아 있지 않을까? 참 아쉽게도 ‘구루물’마저 이미 없어졌다. 구루물의 정확한 위치는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247-1번지(호국로 162번길 22)이다. 그런데 이곳에 1990년대에 5층짜리 부강아파트가 건설되었고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주민은 모두 이주하고 을씨년스럽게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물은 ㄷ자형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의 안쪽에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 건설 전까지 마을 주민들이 우물로 이용하였으며 규모도 꽤 컸는데, 벽체가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마 근대에 보수가 이루어진 듯하다.
    운천동의 지명을 보면 자연 마을인 구루물(운천동)·북수거리·새터말·연당리·운천산정말·산직리·샘리·집너머 등과 함께 돌고개·수안들·뚝거리·양병산·오리나무골 같은 산과 들과 고개 이름이 정겹다. 그리고 봉림·북숲·북수·북수거리·북수들·수안들·숲거리 등 운천동의 명승고적이었던 봉림수(鳳林藪)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보여 주목된다. 그런데 예전에 마을을 오가던 고개와 들녘과 숲이 지금은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흐르는 무심천 물처럼 세월이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