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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의 젖줄 무심천-2부

2024-04-04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청주문화의 젖줄 무심천-2부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2. 청주문화의 젖줄 무심천
    고려와 조선시대에 청주에는 큰 홍수가 많이 발생하였는데 20세기에 들어서도 큰 물난리가 있었다. 특히 1906년 7월에 일어난 병오년 대홍수는 무심천의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고 유로가 변경되기도 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그해 7월 11일과 12일에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충청도 일대에 더 심각하게 내렸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청주였다. 『청주연혁지』에는 ‘공전(空前)의 대홍수’라는 제목으로 서울보다 4일 이른 7월 7일(양력 8월 26일)부터 9일까지 연일 장대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고 하였다. (중략)
    무심천 제방이 무너진 곳은 은행나무가 있던 상류였다. 청주시장은 석교동의 무심천 옆이었는데 장날에는 백사장까지 장이 섰다고 하였다. 이 시장은 홍수에 완전히 침수되었고, 청주 읍성까지 범람한 물이 들어차서 읍민들은 높은 지역인 청주진위대 경내와 남문과 서문 문루에 올라가 피난하였다. 당시 나뭇가지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구해달라고 요청하며 하루 밤낮을 지낸 후 겨우 생명을 건진 사람이 적지 않았고, 사람과 가축이 휩쓸려 떠내려갔지만 구조할 방도가 없어서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참상은 밤낮 계속되었다. 청주에서 외지로 나가는 길도 끊어졌다. 청주에서 경부선 기차를 이용하려면 조치원으로 가야 하는데 이 길이 모두 두절되었다. 
    이때의 홍수에 충북 위유사로 임명된 이탁응은 수해 지역을 둘러본 뒤 탁지부에 ‘청주·보은군에서 수재를 당한 민호(民戶)에 대해 특별히 구휼해 주는 은전을 베풀어 달라는 보고’를 올리면서 청주의 참상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청주군은 땅이 조금 넓어서 동쪽은 산골짜기이고 서남북은 벌판인데 강이 둘러가고 하천이 서로 합류해서 비록 가물거나 건조한 해라도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음력 7월 12일과 13일 이틀간의 비로 큰물이 넘쳐서 지경 전체가 재해를 당했다. 읍내는 물에 성이 무너져서 큰물이 망망하여 물에 쓸려 빠져 죽은 가호의 수가 많고 형체가 있던 자리가 비어 있어 읍의 모양을 보존하기 어렵다.” 
    『황성신문』은 9월 20일 자로 뒤늦게 ‘청주 수재(水災)’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청주에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지난날 장마에 청주읍에서 떠내려가거나 무너진 가호가 수백 호인데, 물에 빠져 죽은 수가 6백여 명이오, 병정 중 거처할 곳이 없는 사람이 50여 명이라 한다고 하였다. 
    병오년 대홍수로 무심천의 유로까지 달라졌다. 남쪽으로 지류가 형성되었는데 여러 해에 걸쳐 장마가 질 때마다 물길 양쪽의 흙을 침식해서 하상이 넓어졌다. 이 지류가 본류가 되고 본류는 차차 메워져서 섬이 생기고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도시계획에 의해 서쪽으로 제방을 옮겨 쌓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데 1932년에 제작된 제방 설계도를 보면 제방을 직선으로 설계한 것이 나타난다. 
    조선 후기의 고지도와 1910년에 측량하여 1912년에 발행된 지형도를 보더라도 무심천은 자연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 흘렀던 사행천이었다. 운천동 부근에서는 동쪽으로 심하게 굴곡을 이루어 옛 MBC 자리인 지금의 덕벌초교 삼거리에서 향군로를 따라 율량천으로 이어졌었다. 그러다 1930년대 지금의 무심천 제방공사가 마무리된 후 큰 폭우에도 시내가 침수되는 일이 없어졌다. 무심천은 본래 천정천으로 수재의 위험이 상존하였으나 하상을 낮추고 특히 운천동지역은 택지개발로 인해 지면이 제방 높이만큼 3m 가까이 높아졌으므로 안전해졌다. 다만, 택지개발에서 제외된 운천초등학교 일대는 예전의 지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상당히 저지대를 이루고 있다.  

 
무심천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무심천은 청주의 자연환경에서 중요한 하천이다. 1970년대 초까지 아이들이 물놀이로 첨벙거리고 밤이면 인근 주민들이 목욕하러 나왔을 정도로 수질이 좋았으나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생활폐수가 그대로 유입되면서 악취가 진동하고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등급 외의 오염천이 되었다. 갈수기에는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모습이 다반사였다. 이에 청주시는 1990년대부터 무심천 수질개선을 위한 사업을 벌여 우선 하상도로의 구조물을 상당 부분 철거하고 시멘트와 물길이 직접 닿지 않도록 친환경 하천으로 개선하였다. 1999년 4월에는 흥덕구 옥산면 가락리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준공하여 1일 28만 톤의 하수를 고도 공법으로 처리하면서 무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데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무심천 모습



    현재 무심천에는 수달이 살고 운천동 앞에서는 철새들이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물이 맑아지니 민물고기들도 자연히 돌아와 얼룩동사리, 밀어, 민물검정망둑, 미꾸리, 미꾸라지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대다수의 도시가 도심의 하천을 복개하였지만 무심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다. 제방과 하상도로 등의 정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노천하천은 거의 변하지 않고 오늘도 옛날 그대로 흐른다. 운천동지역만 하더라도 시민 건강을 위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꽃동산을 방불하게 하는 수변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휴식과 심신단련의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맞은편 쪽은 주로 차량이 달리는 하상도로가 건설된 것과 비교된다. 
    청주 도심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무심천에는 여러 개의 교량이 가설되어 있는데 운천동 지역에는 남쪽과 북쪽 끝에 제1운천교와 제2운천교가 있고, 흥덕사거리에서 우암사거리를 연결하는 흥덕대교가 놓여 있다. 흥덕대교는 본래 충북선 철교가 지나던 곳으로 1990년에 길이 486m, 폭 15m, 4차선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2월에 완공되었다. 흥덕구와 청원구를 연결하는 직지대로에 속하며 무심천을 따라 건설된 청주에서 가장 큰 복합교량이다. 고가 교차형식으로 건설되어 있으며 다리 상부공은 강상 RC 슬라브 공법으로, 하부공은 T형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이밖에 곳곳에 징검다리와 낮은 잠수교를 설치하여 무심천에 운동하러 나온 시민들이 쉽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