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충북선 철길과 직지대로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9. 충북선 철길과 직지대로
17세기 영국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발판이 되었고, 산업혁명의 대부로 칭송받는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혁신하여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1812년 존 블렝킨솝은 최초의 실용적인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교통과 물류이동의 대변혁을 이끌어 현대 산업사회를 열었다. 좀 늦었지만 조선에서도 1880년대부터 서양문물의 도입과 함께 막연하나마 철도에 관한 지식과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1889년에는 조정에서 철도부설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으나 실행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894년 일본은 한일잠정합동조관의 체결로 조선에서 실질적인 철도부설권을 확보했다. 조선에서도 민족자본으로 철도사업을 할 필요성을 깨닫고 박기종 등이 대한철도회사를 세워 1899년 서울-의주 간 철도부설 허가를 받기도 했으나, 국내 자금의 부족과 일본의 방해 등으로 실현을 보지 못했다. 결국 1899년 일본이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제물포-노량진(지금의 영등포) 간 33.2km 구간을 개통하였고, 1900년에 한강철교를 준공하자 지금의 서울역까지 연장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철도부설권을 장악한 일본은 1901년부터 경부선을 건설하기 시작해 1905년 서울-초량 구간이 개통되었다.
경부선의 개통은 청주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 상인들의 유입이 증가하였고, 충북도청을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하는 현실적 이유가 되었다. 충주에서 서울을 가려면 3일이 걸렸던 것이 청주에서는 조치원역을 통해 하루 만에 서울 출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조치원에서 청주를 연결하는 신작로가 개설된 데 이어서 충북선이 건설되었다. 충북선은 경부선 조치원역과 중앙선 봉양역을 잇는 철도 노선이다.

충북선 철도가 그려진 청주시가도(1932년)



충북선 철도 부설의 필요성은 191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다. 충청북도는 농업과 잠업이 발전하였고 임산과 광물의 생산이 많은 곳이어서 이를 이동시키기 위한 철도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 충북선 철도는 두 개의 철도회사가 경합하였는데 노선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충북경편철도회사는 부강을 기점으로 충북 내륙을 연결하는 계획안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경편철도회사는 공주를 기점으로 조치원과 청주를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경편철도회사의 안을 채택하여 1917년 8월에 충북선 철도 건설을 허가하였다. 공주-조치원 구간은 취소하여 조치원을 기점으로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로써 충북선은 1920년 3월에 우선 조치원-청주 사이 22.7㎞ 구간의 공사가 착수되어 1921년 11월 1일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어서 1923년 5월에 청주에서 청안까지 23.9㎞가 연장되어 청안역(지금의 증평역)에서 축하회를 개최하고 개통하였으며, 1928년 12월 25일에는 충주역까지 연장되어 성대한 개통식을 열었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 1946년 5월에 철도가 국유화되었고, 1958년 12월에 충주에서 봉양까지의 35.2㎞의 노선이 연장되어 지금의 충북선이 완성되었다.
1921년에 처음 개통된 충북선은 조치원을 출발하여 오송역-월곡역-정봉역-송정역을 거쳐 청주시내의 청주역에 이르는 노선이었다. 청주의 서쪽과 북쪽의 외곽을 지나는 지금의 충북선 노선과는 많이 달랐다. 조치원에서 지금의 청주역이 된 정봉역까지는 큰 변동이 없으나 정봉역에서는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서촌동과 지동동 복대동을 지나 솔밭공원 부근에 송정역이 있었고, 여기서 봉명사거리 고개를 넘어 운천동의 한복판을 지났다. 지금의 직지대로이다. 당시 운천동은 지금의 운천동과 사직1동을 포괄하고 있었다. 청주 외곽의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던 운천동을 지나서 지금의 흥덕사거리에서 남쪽으로 꺾어 사직사거리에 이르고 이곳에서 다시 동쪽 시내 방향으로 돌아 지금의 청주대교를 지나 성안길 입구에서 다시 북으로 꺾어 청주역에 닿았다. 청주역은 청주시청 남쪽에 북문로에 있었다. 이곳에는 2019년 1월 초창기 청주역 복원을 준공하고 ‘옛청주역사공원’을 조성하여 청주의 옛 모습을 되새기는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956년 6월에 월곡역은 미호역으로, 송정역은 서청주역으로 각각 역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1968년 11월에 청주역을 우암동으로 이전하면서 시내의 노선도 크게 변경되었다. 운천동 흥덕사거리에서 사직사거리와 청주대교를 거쳐 북문로 옛 청주역에 정차한 후 청주대학교 앞을 지나 청주농업고등학교 서쪽 담장을 따라 북으로 달려 사천동을 거쳐 정하역에 이르던 본래의 노선은 폐지되고, 흥덕사거리에서 지금의 흥덕대교를 건너서 북부시장 북쪽으로 돌아가는 철도를 신설하고 우암동에 청주역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다음해인 1969년에 경부고속도로의 천안-대전 구간이 개통되고 청주IC가 생기면서 청주의 교통 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교통의 수요가 철도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추세에다 청주의 도시발전에 철도가 장애요인이 된다는 이유가 곁들여져 충북선 철도의 청주 시내 노선은 다시 개편되었다. 불과 12년만인 1980년 10월에 기존의 정봉역을 청주역으로 변경하고 이곳에서 청주산업단지 북쪽의 외곽을 크게 돌아 오근장역에 이르는 노선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청주역 부지는 MBC가 매입하고 건물을 개조하여 방송국이 되었다.
충북선이 지나던 철도는 오늘날 대부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변했다. 무심천에 놓였던 서문철교는 청주대교로 확장 개축되어 청주의 관문이 되었고, 운천철교는 흥덕대교로 변신했다. 직지대로와 사운로에 이어 사직대로의 일부도 철길이었고, 청주농고 옆 새터로에도 기차가 달렸다. 이 중에서 직지대로는 청주역에서 청주대학교까지 8.9㎞에 이르는 큰 도로인데 이 도로의 동쪽 끝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충북선 철도였다.

충북선 철도(지금의 운천동 직지대로)



언덕 위에 지어진 청주의료원의 북쪽 낮은 계곡을 따라 칙칙폭폭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기차의 모습이나 운천동에 진입하는 어디쯤에서 철도를 보수하는 역부의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운천동의 직지대로는 충북선이 개통된 1921년부터 1980년까지 60년 동안 기찻길이었다. 청주역이 북문로에 있었을 때나 우암동이 있었을 때나 운천동은 기차가 다니는 동네였던 것이다. 1963년에 운천동의 남쪽을 떼어내 사직1동을 신설한 것이었으므로 옛날의 충북선 기차는 운천동의 중심부를 지났다. 그런데 이 기찻길은 운천동에서 사직1동이 분리되어 나갈 때 그 경계가 되었다. 운천동 역사의 부침에 충북선 철길도 그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직지대로가 되어 승용차가 마치 열차의 긴 행렬을 이룬다.

EDITOR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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