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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상상이고 꿈이다

2021-04-29

문화 문화놀이터


청주문화생태계 DB
문학은 상상이고 꿈이다
'교사, 시조 시인, 수필가 - 성낙수 '

    성낙수 시인의 문학 행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옥천 출신 성낙수 시인은 교사였던 부친을 따라 이사 다니다 보니 3개 초등학교를 거쳐서 졸업은 옥천 삼양초등학교에서 했다. 옥천중학교에 입학하여서, 졸업은 청주 주성중학교에서 했다. 이렇게 여러 학교를 거치며 안정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여 외롭게 청소년 시절을 보낸 이야기가 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청주고등학교와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서울에 있는 경희대학교에서 하면서 좋은 문학인들을 만났다. 황순원 서정범 등과 만나 교류하면서 시문학 세계를 넓혔다.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1학년 때 교양학부에서 ‘현상문예공모’ 대회가 있어 출전하여 시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이 2년 치 등록금이었다. 대학 신문사가 주최한 ‘현상문예공모’ 에서도 시 부문 장원을 해서 4년 치 장학금 규모의 시상금을 받았다. 그러면서 시 쓰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매일 쓰던 시를 ROTC장교로 근무하던 2년간은 쓸 수 없었고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1979년 영동중학교 국어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다시 펜을 잡았다. 영동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청시(땡감)문학회’를 조직해 5년간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 후 모교인 청주고등학교로 부임해 4년간 ‘원탑문학회’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충북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4년 동안 ‘벽문학회’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지도했고, 옥천고등학교에서도 3년간 문학회에서 지도했다. 문학회가 있는 학교에서는 당연히 문학 지도를 했고, 아직 문학회가 없는 학교에 가면 문학회를 창설했다. 영동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청시문학회’를 만들었고, 중앙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울림문학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흥덕고등학교에서는 ‘뒤란문학회’ 만들어 지도했다. 


문학은 상상이고 꿈이다
    성낙수 시인은 학생들에게 늘 역설했다. 
    문학은 상상이다. 상상이고 꿈이다, 라고 말했다. 상상이 과학보다 수학보다 앞서 있다. 문명보다 기계보다 먼저다. 상상하고 꿈을 꾸었기에, 상상이 있었기에 문명발전을 가져왔다. 그 모든 상상이 곧 문학이다. 문학이 있기에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었고, 실현 가능했다. 문학인이 비행기를 만든 건 아니지만, 문학을 바탕으로 꿈을 꾼 과학자가 나온다는 거다. 
    학생들에게 문학을 먼저 배우게 했다. 가는 곳마다 학생들에게도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자신이 그랬듯 크고 작은 대회에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수상할 기회를 주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문학동아리로 끌어들여 문학을 먼저 하게 했다. 어느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와 상관없이 문학을 먼저 하게 했다. 하여 제자 중에는 의대에 간 학생도, 과학자나 연구하는 분야의 학생도 있다.


 
문학은 쉬워야 한다
    문학이 어려워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성낙수 시인 지론이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경희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일화가 생각난다. 한번은 지도교수께서 ‘문학은 거짓말로 시작한다.’ 라고 하시며 거짓말 발표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보신탕 국물이 한 방울만 발등에 떨어지면 삼복더위를 잊는다.’ 고 말씀하셨다. 내 차례가 되었다. ‘대청댐에는 전두환 고기와 이순자 고기가 살고 있다.’ 했더니 믿지 않는 거다. 하여 대머리인 물고기는 전두환 고기고, 주걱턱인 물고기는 이순자 고기다, 청주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모두 웃었던 적이 있다. 
    시는 연상이라며 쉬운 말로 시를 설명한다. 흑진주를 보고 보들레로가 애인 흑인 여자를 떠올려 애인을 흑진주로 표현했다. 그게 시다. 복숭아를 보고 맛있다 하는 건 시가 아니다. 여자 가슴을 연상하여 얼굴이 빨개졌다고 말하는 게 시다. 우동 그릇에 빠진 하늘을 동전만 한 하늘이 빠졌다고 말하는 것, 그게 시다. 연상을 자주 하면 시를 쓸 수 있다. 빵을 말할 때 배고픈 이를 꺼내야 하는 게 문학이다. 장미를 보고 어머니를 말해야 하고, 어머니를 보고 장미를 말해야 한다. 졸립다고 말하면 시가 아니고 글씨가 이사를 간다고 말하면 시다.


 
시는 그리움
    과도한 업무와 밤늦게 퇴근하는 현실은 시를 가슴에 묻고 살게 했다. 
    하지만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현직에 있으면서도 1979년도에 ‘추풍령문학회’과 ‘내륙문학회’ 문을 두드려 입회했다. 현직에 있으면서 시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1년에 30여 편 정도 틈나는 대로 간간이 작품을 썼다. 두 군데 문학회 동인지에 발표할 정도만 유지했다. 1990년도에 ‘제3회 한국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여 창작 활동을 했다. 2001년도 내륙문학회장을 맡고 있을 때는 지역 일간지 충청일보와 중부매일 신문에 100여 편 정도 칼럼을 기고했다. 
    고교시절 절친 넷이 ‘비우애’ 동우회를 만들어 문학 활동을 했다. 네 사람은 비가 오면 만나는 모임을 했다. 비가 오면 교복 입은 채로 비를 맞으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문학 치장을 하고 멋으로 책 한 권 끼고 다녔다. 문학도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자신들은 특별한 그룹이라 생각했다. 여학생들이 끼워달라고 했으나 끼워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모르던 시절이었으나 반짝거리던 당시가 그립다고 술회한다.
    시집으로『청람집』『친구에게』『적중하는 화살 곧게 날지 않는다』『소리의 일상』『맑은 고을에 피어난 소중한 꽃』『그리움은, 붉은 압류 딱지』6권이 있다. 그중『그리움은, 붉은 압류 딱지』시집은 e-book으로 전자시집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