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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굴뚝

2022-01-26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굴뚝
'글. 최명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인생이라면 굴뚝은 한숨의 배출구가 되겠다. 배설구가 없는 풍선을 불기만 하면 결국엔 터지고 의미를 상실하듯이 배설이 없는 삶이라면 애저녁에 우리도 가슴이 다 타버렸을 거다. 그래서 우린 모두 굴뚝 하나 세워두고 삶을 지피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눈이 매웠다, 마른 솔가지로 마중 불을 놓고 덜 마른 장작이나 생솔가지를 태워 밥을 짓는 날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굴뚝은 속 타는 이의 한숨처럼 시커먼 연기를 게워냈다. 당신 삶도 그럴 때가 있었다. 부득부득 반항하는 삶은 생솔가지처럼 생떼를 부리고 당신은 마중 불이 되어 온몸을 태웠다. 어머니의 굴뚝은 푹푹 한숨을 토했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겠지만, 굴뚝이 막힌 날은 매운 연기가 역류했다. 불길이 되 나와 어머니를 위협하고 삶이 매캐한 연기로 자욱할 때는 눈물 바람이 불었다. 한숨은 갈 데를 몰라 몸을 파고들어 위 천공으로 나타났다. 고3 예비고사 준비 중에 장기 결석하며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다. 하루는 속이 벌겋게 타는지 한숨을 뱉어내는 아버지 곰방대를 한참 바라보았다. 
    막힌 굴뚝을 내리면 콜타르 같은 시커먼 이물이 쏟아졌다. 일일이 긁어내느라 아버지 몸에 검은 이물이 들러붙었다. 다시 굴뚝을 세우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는 후련하게 빠져나갔다. 삶이 그렇게 한고비씩 넘어갔다.



    어머니는 우리 팔 남매를 가질 때마다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했다. 열 달 내내 먹기만 하면 토하기를 반복했는데 아버지가 조제한 한약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층층시하의 시집살이로 쌓인 한숨이 출구를 찾지 못해 입덧으로 그리 유난을 떨었는지 모른다. 보다 못한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곰방대를 슬쩍 가져와 담뱃불을 붙였다. ‘한 모금만 빨아 보아라.’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메슥거리던 속이 가라앉았다. 태중에 아기를 품고 할 일은 아니지만, 때로 무지가 약이 되기도 해서 짙은 한숨이 곰방대 굴뚝으로 빠져나갔을 거다. 
    어느 해 세 아이를 데리고 고향 집에 다니러 갔다가 어머니 방에서 솔담배 곽을 보았다. 오빠와 막내를 홀연히 앞세우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날이 뜸해졌다. 낮에는 스스로 몸을 괴롭혀 잊으려 애썼지만, 길고 긴 밤엔 담배가 잠시 위안이 되었던 그때를 기억하고 한의 배출구로 삼았으리라. 
    안덕벌 담배공장 굴뚝은 크고 높았다. 이천 명 산업 일군이 불을 지피면 희망의 상징처럼 연기가 펄펄 솟아올랐다. 그 긍정적 여파로 그들의 이웃과 도시까지 발전 일로를 걸었다. 솔담배와 장미를 생산했는데 아랫녘에 살았던 나는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인연이 닿아있었다. 고맙게도 어느 뉘가 하품에 겨워 도리질하며 지문이 닳도록 포장한 담배를 어머니가 한숨의 배출구로 삼고 노후를 견디셨다. 
    남편의 친구 미스터 오가 다녔던 담배공장이다. 오빠가 뻐끔담배로 낭만을 배울 때 손가락에 장미 한 가치 끼웠었는데 그의 손길이 닿은 담배였을 것만 같다. 그는 기계 소리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 같더라고 했다. 형과 형수와 동생과 누이까지 다섯 식구가 담배공장에서 돈을 벌며 희망을 보았다. 굴뚝에서 펄펄 연기가 나고 장미 한 가치로 한숨을 뱉으니 살만하더라고 했다.
    담배공장 굴뚝이 한동안 식었었다. 얼추 그때쯤이었나, 어머니는 담배도 놓고 세상도 놓고 요양병원에 계셨다. 모두 살길 찾아 떠나고 인적이 끊어진 공장, 정적 위로 곰팡이가 슬었다. 도시 한 모퉁이에 혹처럼 붙어 날짐승의 배설을 받아내고 있었다. 삶의 회오리에 몸을 던졌던 수많은 미스터 오와 누이들과 그들과 인연이 닿았던 우리 어머니까지 눈물겨운 체취가 느껴져서 가슴이 따끔거렸다.



    담배공장이 돌파구를 찾았나 보다. 다시 한번 더 불을 지피고 문화제조창으로 거듭났다. 소문을 듣고 갔더니 무언지 모를 짠함이 먼저 다가왔다. 문화공장은 담배공장 골조를 바탕으로 서 있었다. 칠이 벗겨진 기둥에 숫자 86이 선명하다. 무슨 공정을 담당했던 구역일까. 곳곳에 담배 진이 들러붙어 있을 것 같고 기계 소리와 웃음소리와 미스터 오 가난이 옷 벗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크고 높은 굴뚝으로 다시 연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며 한동안 도시가 설렘으로 술렁거렸다.
    가슴이 뻐근했다. 솔 한 개비, 장미 한 개비 대신 정갈하게 꽂힌 책들로 도서관을 차려놓았다. 장인이 빚은 태깔 고운 도자기엔 어떤 음식을 담아내야 어울리려나. 국립미술관의 위상은 자부심에 담아두었다. 공예품을 나열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이, 작은 카페 주인, 식당, 옷 가게 주인의 얼굴이 낯익다. 우리 정겨운 이웃이 모여 삶의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포만감에 젖어 산만해진 도시와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 꿈을 굽는 사람들을 위해 문화공장 까무룩 하게 높은 굴뚝에서 오늘도 연기가 난다. 다시 한번 더, 때를 기다리며 우울한 이 있거든 여기와 힘을 얻고 불을 지펴 볼 일이다. 생솔가지면 어떤가, 마중 불이 있고 큰 굴뚝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굴뚝의 진수는 배설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으니 그대가 살아 있다는 안부가 아니겠는가. 
    문화공장 마당에 초록 잔디가 번성하고 언저리에 오래된 마로니에 두 그루가 열매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