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이드

정책주간지 K-공감
일이 내 삶의 전부였는데 돌아보니 뭔가 빠진 듯 내가 잘 살아온 걸까요?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내담자 사연
저는 일을 사랑합니다. 무엇이든 저에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건 열여섯 살 때였어요. 동네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청소를 돕는 일이었는데 첫 월급을 받은 날 제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과외를 했습니다. 과외가 없는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집이 가난하거나 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마음을 움직인 건 일을 할 때마다 느껴졌던 ‘내가 쓸모 있다는 만족감’이었습니다. 공부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대신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일했던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설날과 추석 말고는 쉬는 날도 없이 일했습니다. 연애나 취미활동에는 관심이 없었고 쉬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졌어요. 덕분에 지금은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자산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아무 의심 없이 일만 하다 얼마 전 제 삶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소견이 있어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거든요.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제가 살아온 삶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과연 잘 살아온 걸까요? 일 말고도 제가 만나고 겪어야 했던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김혜선·가명, 42)





마음 상담소 답변
먼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향해 달려온 혜선 님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혜선 님만큼 열심히 살지 못한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찾아온 결과가 경제적인 안정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원하지 않던 병이 함께 찾아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에 전념하면 틀림없이 완쾌되리라 생각합니다.
혜선 님처럼 일을 사랑하며 오직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다만 일만 하고 제대로 쉬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만 하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아 매우 위험하다.” 이런 위험한 상태를 다른 말로 ‘일중독’이라고 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독’이라는 질병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 중독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공통으로 우울증이나 번아웃증후군(탈진증후군) 같은 정신적 문제나 심혈관질환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치유해야 할 병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일중독은 치유해야 할 질환
일중독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미국 일 중독자 협회는 일중독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면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밀려옴 ▲일 이외 다른 취미나 사회적 활동에는 관심이 없음 ▲지쳐 있다가도 일만 하면 마음이 들뜨고 에너지가 샘솟음 ▲자기 전까지 또는 주말이나 휴가 때도 머릿속에 일과 관련된 생각이 가득 참. 만약 위 네 가지 증상 중 세 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일중독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과거에는 일중독을 성실함으로 해석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잠을 줄여가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보낼 시간을 포기하고 여가시간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태도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균형 잡힌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늘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든 사회적 측면에서든 일중독은 개선해야 할 습관이자 치유해야 할 질환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혜선 님의 경우 환경에 의해 강요된 일중독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간 습관성 일중독에 해당합니다. 타고난 완벽주의 성향에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성취욕을 가지고 있어서 완벽하게 일을 잘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런 성향이 충족될 때만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타고난 성향이 충족되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할 때도 혜선 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자기 수용성이라고 합니다. 자기 수용성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한계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비난을 피하려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낯선 분야는 외면하거나 경험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혜선 님은 일과 성취의 모습만 수용하느라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여유로움을 놓쳐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고요.
열심히 일했던 만큼 열심히 쉬고 치료받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보세요. 혜선 님의 열정과 성실함이라는 강력한 엔진에는 휴식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그런 브레이크의 존재를 일깨워주기 위해 병이라는 시련을 겪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엔진만큼 강력한 브레이크가 달린 제2의 삶을 만들어가길 바라겠습니다.
최종솔루션
“열정과 성실함이라는 강력한 엔진에는 휴식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그런 브레이크의 존재를 일깨워 주기 위해 병이라는 시련을 겪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엔진만큼 강력한 브레이크가 달린 제2의 삶을 만들어 가길 바라겠습니다.”

EDITOR 편집팀
K-공감
전화 : 044-203-3016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갈매로 388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