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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100」따라가기
키, 아파트 17층 몸무게, 중형승용차 69대 1018세 은행나무 신체검사 했더니…
'경기 양평 용문사 & 은행나무'


경기 양평 용문사 &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는 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말한다. 전국에서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은행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공룡이 출현하기 훨씬 전인 2억 7000만~2억 8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 남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불에 잘 타지 않고 가지와 뿌리를 제거하고 줄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몇 년간 잎이 돋는다고 한다. 현재 전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등 모두 25그루다. 이중 7그루는 수령 10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문사



국내 최고령은 경기 양평군에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이하 용문사 은행나무)로 수령이 1100년으로 알려졌다. 길어봐야 100년 남짓 사는 사람에게 1000년 넘은 세월을 보낸 은행나무는 위대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크기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10월 용문사와 용문사 은행나무를 지역문화와 가치를 알리는 ‘대한민국 로컬100(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했다. 용문사 역시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이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도 넘친다. 또다시 봄을 맞이한 은행나무를 만나러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 은행나무에는 올해도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용문사는 용문산(해발 1157m)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용문산은 양평을 대표하는 산이자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높다. 관광단지를 품에 안고 있는 용문산은 웅장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절경으로 유명하다. 가을엔 오색 빛으로 물든 단풍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197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용문산관광단지는 넓은 잔디광장과 캠핑장,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빈다.

지금은 폐역이 된 추억의 간이역 구둔역. (사진. C영상미디어)



오랜 역사, 전설 가득한 천년목
용문사는 관광단지를 지나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일주문을 지나니 1.3㎞의 오르막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차량 통행을 막은 보행자 전용 산책로는 계곡과 도랑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특히 길가에 따로 낸 도랑의 맑고 경쾌한 물줄기를 따라 걷노라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슬슬 숨이 차오를 때쯤이면 멀리 용문사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봐도 엄청난 크기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놀랍다. 은행나무 둘레는 성인 6~7명이 팔을 쭉 뻗어도 다 안을 수 있을까 싶다.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꼭대기가 보일 정도다.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듯했다.
천년 넘은 세월을 견뎌온 나무인 만큼 수많은 전설과 사연을 안고 있다. 먼저 이 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으니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말도 있다.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댔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쳐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고종 황제가 승하했을 때는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8·15 해방과 6·25전쟁 때에는 인근 주민들이 “윙”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정미의병 항쟁 때는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절집과 숲이 불에 탔지만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무에 ‘천왕목(天王木)’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보다 높은 벼슬인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았다.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나무여서일까?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는 사람들의 소원지가 빼곡하다. 노란 은행나무 잎 모양의 종이에 건강, 취업, 사랑 등 저마다의 소원이 적혀 있다.
고즈넉한 천년고찰에서 힐링타임
그동안 용문사 은행나무의 수령이 1100년가량으로 추정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령이라고 알려졌지만 정보가 제각각인 데다 정확하지도 않았다. 이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높이, 둘레, 부피, 무게, 탄소저장량 등 나무의 정보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최신 라이다(LiDAR) 기술을 이용, 용문사 은행나무의 실물과 똑같은 디지털 쌍둥이 나무를 구현해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산림과학원은 3월 4일 검사 결과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가 1018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첨단기술로도 1000년 넘은 나무임이 확실해진 것이다.
자세한 신체검사 정보에 따르면 용문사 은행나무의 높이는 38.8m로 아파트 17층 높이에 달한다. 둘레는 11m, 최대 가지 폭 26.4m, 전체 나무 부피는 97.9㎥다. 이중 줄기는 44.6㎥, 가지 23.2㎥, 잎 2.9㎥, 뿌리 27.2㎥다. 전체 나무 무게는 97.9톤으로 중형승용차 약 69대와 맞먹는다. 또 산림과학원이 측정된 나무 정보를 바탕으로 탄소저장량을 계산한 결과 총 탄소저장량은 31.4톤이었고 연간 이산화탄소흡수량은 113㎏으로 50년생 신갈나무 11그루가 연간 흡수할 수 있는 양과 같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충분히 봤다면 이제 용문사를 둘러볼 차례다. 용문사는 신라시대(913년)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전후해 두 번이나 찾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대웅전 앞에 서서 보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마치 사찰을 지키고 서 있는 수호신 같다. 천년고찰치고는 규모가 소박하고 건물도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불에 탔고 그나마 소박하게라도 복원된 것을 6·25전쟁이 거듭 잿더미로 만들었다. 대부분 1970~90년대에 지은 건물들이지만 차분하고 예스러운 품위가 느껴진다.
관음전 옆으로 난 숲 산책로는 보물 제531호 용문사 정지국사탑으로 향하는 길이다. 보물도 보물이지만 탑까지 향하는 산길이 잘 정비돼 있어 산림욕을 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걷기에도 좋다. 정지국사탑은 고려 후기부터 활동하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한 정지국사의 유골을 봉안한 승탑이다. 연꽃을 새긴 팔각탑에서 80m 떨어진 자리에 스님의 업적을 기록한 정지국사비가 있다.
용문사는 템플스테이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산림이 울창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곁에 있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 중에서도 인기가 높다. 일상에서 벗어나 산사에서 여유롭게 힐링타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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