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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글 가르쳐주던 영감이 지금 공부하는 것을 보면 칭찬해 줄 텐데

2021-06-21

교육 교육학원


배움이 활짝
나에게 한글 가르쳐주던 영감이 지금 공부하는 것을 보면 칭찬해 줄 텐데
'충주 열린학교 문해교육반 안병순 할머니 인터뷰'

    충주열린학교 문해교육반에서 한글을 배우는 안병순(81) 할머니는 한글을 못 배운 설움부터 4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 시까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글을 가르치려 애쓰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느끼게 된 허전함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충주대소원초등학교 김나진(6학년)·송연우(5학년) 학생과 함께 들어보았다.
    “잘 사는 거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글을 알고부터 큰 힘이 되고 행복한 삶이 열렸거든요. 전에는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둘러대기 바빴죠.”


안병순(81) 할머니 인터뷰
    김나진: 안녕하세요! 저는 충주대소원초등학교 6학년 김나진입니다.
    송연우: 저는 같은 학교 5학년 송연우입니다.
    김나진: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신 사연을 듣고 싶어요.
    안병순: 어릴 때 몸이 약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어요. 6.25를 겪은 뒤 10살이 되어서 출생신고를 했을 정도였죠. 초등학교를 11살이 다 돼서 들어갔는데 아이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집안도 가난해서 끝까지 마치지 못했어요.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살았죠. 그러다가 5년 전, 남편 요양원에 서류 제출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충주열린학교’ 간판이 보이더라구요. 많이 망설였지만 우리 양반이 하던 말이 생각 나더라구요. “배워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찾아갔죠.
    송연우: 그럼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신 건가요?
    안병순: 2016년부터 열린학교에 다녔으니 5년 됐네요. 2018년에는 초등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어요.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면서 저도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된 거죠. 처음 글을 배울 때 남편은 늙어 공부하는 나를 위로해주며 “잘하네, 잘했어”라며 칭찬해줬어요. 저는 늘 그런 남편을 그리며 열심히 글을 쓰고 읽고 있답니다.
    김나진: 할머니가 쓰신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을 오기 전에 읽어봤어요. 자서전에 오빠분께 쓴 편지도 있던데요,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안병순: 남편과의 징검다리가 된 오빠... 남편과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다니다가 저와 남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줬어요. 부모보다 더 부모 같고 친구 같은 오빠였어요. 자상한 성격이라 공부도 많이 가르쳐줬죠. 19살때는 이광수의 ‘흙’, 펄벅 여사의 ‘대지’를 오빠가 읽어주기도 했어요. 글을 잘 모르던 때였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게 해서 한글을 제대로 배우기는 어려웠어요. 아무래도 한계는 있었죠.
    김나진: 시나 편지글 등으로 상을 여러 번 받으셨던데요, 평소 글을 즐겨 쓰시나요?
    안병순: 네, 시간이 날 때마다 낙서처럼 글을 쓰고 있어요. 5년 전부터 지금까지 쓴 공책만 70~80권 정도 되는것 같아요.



    김나진: 지금까지 쓰신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안병순: 충주 범바위골을 다닐 때 영감과 함께 앉았던 따뜻한 바위를 생각하며 지은 ‘바위의 마음’이라는 시를 가장 아끼고 있어요. “화창한 가을 햇볕에 데워 놓았으니…쉬어 가시오. / 힘들면 내 몸 위에 쉬어 가시오.”라는 구절이 있어요. 남편은 제게 가을 햇볕에 데워놓은 따뜻한 바위 같고, 휴식 같은 사람이었죠.
    송연우: 한글을 알게 된 후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요?
    안병순: 글을 배우니 정말 힘이 생겼어요. 배우면 뭔가 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남편이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살아가는 데 용기가 생겼어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거 부럽지 않아요. 글은 행복한 삶의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위 사람들이 내가 걸어가는 걸 보고 “뭐가 그렇게 즐거워?” 라고 이야기해요. 걸음에서도 저의 행복이 느껴지나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감도 생겼구요.
    송연우: 요즘은 어떤 것을 배우시는지 궁금해요.
    안병순: 어제 배운 글이 하나 있는데, 의미가 깊어서 우리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무엇으로 채우려고 하지 말고 그저 나 자신이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과 비교하게 되면 갈등과 고민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더라구요.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속 끓일 필요가 없어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최고면 그만이죠. “나는 나 자신이 최고가 아닌가!”
    김나진: 저희에게 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안병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공부만 잘하는 것이, 착하기만 한 것이 ‘효’가 아니라,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내 배움의 길을 착실하게 살아가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다름 아닌 ‘효’라고 생각해요.


 
만남 이후 할머니께
    송연우(5학년)
    글을 배운 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어요. 한편 반성하기도 했구요. 나는 할머니처럼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지, 남과 비교하면서 힘들어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정자에서 시를 읊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치 시인같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다음에 또 할머니를 뵐 수 있다면 시 한 편 써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나진(6학년)
    할머니께서 쓰신 일기장을 보여주셨는데, 요즘 우리도 잘 안 쓰는 일기를 꽉 채워 쓰셔서 놀랐어요. 글을 늦게 배우신 만큼, 배움의 즐거움을 흠뻑 느끼고 계신것 같아 보기도 좋았구요. 그리고 할머니께서 ‘열린학교’를 가실 때, 즐거운 발걸음으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학교 가는 게 행복한 저의 모습과 비슷하여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냥 나 자신이면 된다”는 말씀이에요. 그 말씀 오래 기억하면서 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겠습니다.